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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피아 게임 II (The Mafia Game II) - 4화

 

 

 

 

 엄마가 차려준 저녁밥을 든든하게 먹고, 이불에서 뒹굴며 책을 읽는 시간은 아주 행복했다.

 

 비록 단칸방에서 살았어도 불행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책 속의 세계에 퐁당 빠져있는 동안 주방에서는 엄마가 설거지하는 소리가 달그닥달그닥 들려왔다. 그 소리는 리듬감이 있고 어딘가 경쾌하다. 나는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며 책을 바라본다. 한 쪽 손만 내려 발에 신은 수면 양말을 끌어올리고, 눈앞을 가리는 앞머리는 빗어올린다.

 

 그러다 어느덧, 잠이 든다.

 

 밤이 오면, 아빠가 올 것이다. 아빠는 온 몸이 노곤노곤해서 지친 발자국 소리를 내며 현관으로 들어선다. 나는 잠이 설핏 잠이 깨지만 그대로 잠들어 있다. "왔어요?" "응. 휴, 오늘도 죽을 뻔 했어." "그런 말 좀 하지 말아요. 말이 씨가 된대." "그래, 농담이야." 엄마와 아빠가 두런두런 대화한다. 아빠는 한켠에서 자고 있는 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후, 옷을 갈아입고,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선다.

 

 그런 나날들. 행복하고 평화로운.

 

 그리고 신(神)은 그런 우리를 저주했다.

 

 어느날부터, 아빠는 밤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의 표정은 슬프면서도 험상궃게 변했고, 어쩌다 가끔 보던 친척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불안한 낌새를 느끼고 엄마의 등 뒤에 숨었다. 어른들은 심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빠는 큰 흑백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었다. 아빠의 직장 동료라고 하는 사람들이 비통한 표정으로 찾아왔다. 그것이 바로 '장례식'이었다.

 

 신은 없다. 신이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할리가 없다.

 

 계속 커가고, 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굳혀갔다. 물론 평소에는 잘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고 내 안의 그늘과 어둠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사춘기도 비교적 원만하게 지나갔다. 아마 엄마가 늘 나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잘 맞춰주었기 때문이리라.

 

 "U, 네 성적으로는 이 정도의 대학이 좋겠다."

 

 개인 상담 시간,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지목해 준 세 개의 대학 학과 중에는 약간 낯선 이름의 대학이 있었다. "이 학교, 괜찮나요?" 나는 물었다. "음. 그 학교 나오면 취업은 잘 된다. 취업에 적합한 교육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미션 스쿨이야." "미션 스쿨?" "기독교 학교. 잘 모르는구나?"

 

 아니요. 잘 몰라서는 아니고. 미션 스쿨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하나 있어서 어느 정도는 알아요. 그런데 걔는 딱히 기독교인은 아니래요.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다음, 나머지 두 학교를 바라보았다. 그 쪽은 취직에 별로 희망이 없는 학과를 선택해야 했다. 그렇다고 재수를? 그것도 좀 그래. 취직이 잘 된다니, 그냥 이 학교로 가자.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선택했다.

 

 뭐,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니까...

 

 "자, 그럼 지금부터 마피아와 의사를 선정하겠습니다. 모두 고개를 숙여주세요."

 

 사회자의 말에 U는 회상에서 돌아왔다. 게임의 참가자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채플에 경쾌한 음악이 울려퍼졌다. 아마 불필요한 소음을 줄이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고, 게임의 분위기를 돋우려는 연출일 것이다. 준비 많이했네. U는 그렇게 생각하고, 다만 약간 춥다고 생각하며 다리를 더욱 모았다.

 

 저렇게 길고 매끈한 다리에 니삭스라니, 저건 반칙이잖아.

 

 모두 다시 고개를 들 때, V는 옆자리의 U를 곁눈으로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가 보군, 이 여름에 니삭스라니. 하긴 오늘 채플의 에어컨은 유난히 빵빵하군. 전기세 많이 나오겠어.

 

 "시작해주세요."

 

 사회자가 말했다. 모두는 일단 서로의 눈치만 봤다. 하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V가 말한 것이다.

 

 "저는 제 옆자리의 U가 마피아라고 생각합니다."

 

 응? 갑자기? U를 비롯해 모두가 놀랐다.

 

 "어?"

 

 한편, 모니터와 U의 녹음기로 채플안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E 일행도 깜짝 놀랐다. E는 한 번 더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어?"

 

 "뭐야. 저거. 저 녀석 뭐하는 놈이야?"

 

 C는 투덜거렸다. 자칫 계획이 초장부터 어그러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런 상황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겁내 빠르잖애...

 

 "일단 이유를 들어보자."

 

 E는 그렇게 말했다. 모두는 귀를 쫑긋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채플 안, K는 V에게 물었다. V는 손을 턱에 가져다대고, 잠시 곰곰히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좌중은 모두 그의 입을 주목했다. 곧 V는 말했다.

 

 "여러분, 모두 아시다시피, 우리 학교는 남녀 성비가 약 7:3 이잖아요. 그런데 남자들은 군대에 가기 때문에 캠퍼스 안의 성비가 대체로 맞는 것처럼 보일 뿐..."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예요?"

 

 R이 약간 따지듯이 물었다. L은 그때 R을 바라보았다. R은 상고머리가 잘 어울리는, 꽤 귀여운 느낌의 남학생이었다. 저런 학우가 우리 학교에 있었네. 아. 프레이즈팀인가. 언젠가 채플 수업 때 본 것 같기도 하다. R은 고양이같은 눈을 조금 더 치켜뜨며,

 

 "실없는 말을 하면 학우님을 의심할 거예요."

 

 라고 말하고, 약간 씩씩거렸다. 나름 용기를 짜낸 것 같다. L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L은 R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학교는, 지방의 산골짜기 학교라서 그런지, 여학생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런 현실을 여학우들이 이용한다, 는 것이 일부 남학우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퍼져있는 불평이었다. 물론 그런 여학우가 없지는 않겠으나, 그렇다고 다수의 선량한 여학우들을 매도하는 논리로 이용하는 것은 자중하자는 반론도 있었다. 어쨌든 정확한 진실은 알 길이 없다. 학내 여론의 집합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인트라넷에서 여학우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일은 상대적이자 거의 절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V는 R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저런 미인이 마피아여야 게임이 재밌을 것이라는 주최측의 농간이 있지 않을까..."

 

 V는 R에게 기세가 눌렸는지 약간 어버버거리며 말했다. E는 팔짱을 끼며 실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라이브 방송의 댓글들을 확인했다.

 

- 확실히 존예긴 하네

- 야 근데 저렇게 깝싸다가 V가 제일 먼저 가겠는데?

- V가 마피아 아니냐?

- 카메라를 의식하는 듯

- 초반부터 개꿀잼 ㅋㅋㅋ

- 다리 존나 섹시하다

- 사회자 어디서 많이 봤는데

- R도 어디서 본 것 같아

- V가 U한테 흑심 품은 것

- 설마? ㅋㅋ

 

 E는 날카로운 눈으로 댓글을 확인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J,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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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가 약간 늦었습니다, 죄송죄송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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