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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피아 게임 II (The Mafia Game II) - 5화

 

 

 

 

 

 '몸의 털클 하나라도 건드리는 놈들은 모조리 죽여버려.'

 

 명령이 떨어졌다. 버스 안은 순식간에 긴장으로 감돌았다. 나는 옆을 바라보았다. 일 년 후임인 이 모 이경은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아니, 손만 떠는 게 아니다. 머리까지 벌벌 떨자 전투 헬멧이 달그닥거리고 있었다. 

 

 "야. 진정해."

 

 나는 이 이경의 벌벌 떨리고 있는 팔을 붙잡았다. 그제야 녀석이 나를 돌아보았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V 수경님, 죄송, 죄송합니다... 참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처음이라 그래. 별 일 없을거야.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 죽여버리자!"

 

 누군가 외쳤다. 이 목소리는... 최 상경인 것 같다. 하, 저 똘아이 새끼... 그러자 누가 또 화답하듯,

 

 "그 씨발새끼들! 강냉이를 모조리 털어버리자고!"

 

 "시바알-!"

 

 "개좆쓰레기씹새끼들!"

 

 잠시 폭력의 함성이 공기를 뒤덮었다. 어디선가 히히히힛, 하고 웃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버스 안은 무거운 침묵으로 감돌았다. 침묵 속에서 웃음 소리 하나만 가득했다. "히히히힛!" 우리는 오늘 또 하나의 '전투'를 한다. 나는 이 이경의 팔을 다시 한 번 붙잡았다.

 

 "하차!"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내렸다. 현장은 거센 함성이 하늘을 찌를 듯 울려퍼졌다. 경찰 버스로 차벽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시위대는 벌써 '진지'의 안쪽까지 들이닥쳤다. 우리는 내리자마자 진열을 정비한 후 시위대와 바로 맞닥뜨렸다. 나는 방패로 한 사람의 압력을 밀어내고 있었다. 힘이 무지막지했다. 방패가 밀리자 손목에 통증이 느껴졌다. "우욱!" 외마디 비명을 지른 나는 자꾸만 진압봉으로 손이 갔다.

 

 때리고 싶다. 격렬하게 때리고 싶다.

 

 "야, 이 개새끼들아! 상부에서 뭐랬어? 다 죽여버리라고 했지!"

 

 소대장님의 불호령이 매섭게 휘몰아쳤다. 때려! 때리라고! 죽여버려! 나는 진압봉을 움켜쥐었다. 그런 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밀어붙인 남자는 이제 나에게 다리걸기를 시도했다. 어, 어? 넘어진다! 나는 우당탕 쓰러졌다. 아, 발목이 나간 것만 같다.

 

 퍽!

 

 그때, 그 남자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나는 눈을 크게 뜨며 그 남자를 때린 사람을 바라보았다. 최 상경이었다. 녀석이 말했다.

 

 "V 수경님. 여전히 우유부단하시지 말입니다."

 

 "이 씹새끼가..."

 

 넘어진 남자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러자 남자의 동료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들이 "폭력 경찰 규탄한다! 물러가라!" 라고 외치며 우리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최 상경은 다시 진압봉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주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은 채, 머뭇머뭇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외치기만 했다. 최 상경은 이를 바득 갈았다. 그러다 또 가까운 어딘가에서 소요 사태가 벌어지자 그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그 무리는 남자를 부축하여 물러났다. 

 

 "작전 중지! 작전 중지!"

 

 소대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전경과 시위대, 양측에서 부상자가 속출하자 시위대는 일단 물러나기를 선택한 것 같다. 그러자 꼰대같지만 상황 판단은 예리한 구석이 있는 소대장도 황급하게 작전을 멈춘 것이다. 영리하다. 어쨌든 부상자가 많아지면 상부에게 겁나 쪼일 테니까. 멀리서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푸하하! 뭐야, 너, 오줌 쌌냐?"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주저앉은 이 이경의 주위로 몇몇이 모여들어 이 이경을 놀리고 있었다. 공포심에 질린 나머지, 이 이경은 그냥 주저앉아버렸나 보다. 몇몇이 이 이경의 전투헬멧을 거칠게 때렸다. "이 새끼는! 좀 맞아봐야 돼. 그래야 적응이 돼." 이 이경은 고개를 푹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소주나 한 잔 하러 가실까요?"

 

 약간 떨어진 곳에서 시위대 몇몇이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좋죠. 해장국 잘 하는 데 알아요." "캬. 오늘도 한 건 했지 뭐요. 전경 한 마리 잡아다가 아주 두들겨 팼지!" "크하하하!" 그들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웃기냐? 이 상황이 웃겨? 즐거워? 나는 그들을 노려보았다.

 

 "지금 이게 웃겨요?"

 

 휠체어를 탄 한 여자가 그들에게 소리를 꽥 질렀다. 그녀는 그들에게 뭐라고 뭐라고 계속 소리쳤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아! 그런데 지금 이게 웃겨!" 그녀가 계속 소리를 치자 그들은 꿀먹은 병아리가 되었다. 그들이 찌질이처럼 돌아서자, 나는 하염없이 이를 바득 갈았다.

 

 환멸이 난다.

 

 세상은 오직 '나'뿐이다.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전역 후, 나는 바로 복학했다. 남들 다 연애하고 즐겁게 캠퍼스 생활을 만끽할 때 나는 오로지 도서관과 편의점에서 낑낑거렸다. 생각보다는 학점이 잘 나오지 않았고, 알바비로는 겨우 연명하는 수준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들어간다. 돈을 모으고, 집을 사고,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

 

 "글렀어."

 

 어느날, '그'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우리는 글렀어.' '왜지?' 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십 년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집 못 사.' '......'

 

 내가 '마피아 게임'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돈 때문이다. 알바비보다는 나으니까.

 

 그런 '내'가, 지금 망신당하게 생겼다... 

 

 V는 R의 공세에 어버버하는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겨있었다. 자신의 실언에 책임을 져야했다. 벌써부터 댓글창은 온갖 조롱으로 도배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섬뜩함이 밀려왔다. 옆을 흘깃 보니, U조차 자신을 왠지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타개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V는 좌중을 빠르게 바라보았다. 굳은 표정들을 하고 있는 좌중과는 다르게, 눈에 띄는 사람이 한 사람이 있었다. 저거다. 저 녀석을 물고 늘어지자.

 

 "L, 너는 마피아가 누구라고 생각해?"

 

 "나?"

 

 저 녀석과는 예전에 수업을 같이 들은 적이 있어. 지금으로선 가장 만만해보이는 녀석이다. 화제를 돌리자. V는 그렇게 생각하며,

 

 "안경만 닦지 말고 네 생각을 말해 줘."

 

 하고 말했다. 그러자 좌중이 일제히 L을 바라보았다. L은 안경을 닦던 손을 멈추고 어깨를 으쓱했다. 눈을 약간 가늘게 뜨고 좌중을 돌아본 L은 그 뿔테 안경을 쓴 다음,

 

 "일단 한 가지는 분명해. 나는 마피아가 아냐."

 

 "응?"

 

 V는 다소 과장된 동작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모두의 관심은 이제 L에게 쏠렸다. 성공이다. V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왜요?"

 

 N이 L에게 물었다. "왜 L 학우님이 마피아가 아니예요."

 

 L은 N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위로 치켜뜨며, 마치 천장을 바라보는 것 같은 눈을 하고,

 

 "나는 '의사'니까요."

 

 "정말?"

 

 S가 입을 '오'하고 오므리며 물었다. 아, 저 L 학우님이 '의사'구나. S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P는 긴 생머리를 옆으로 넘기고 다리를 꼬며 웃었다.

 

 "헤헤. 재밌네. 독특한 전략이네."

 

 L도 맑게 웃었다. 하지만 P는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그러다 제일 먼저 죽으면 인민 측에 손해 아녜요? 대담하시네. 보너스를 못 받잖아."

 

 L은 한 번 더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들은 지금 나를 흥미 반 의심 반으로 바라보고 있다. 의심의 눈초리는 차갑고 날카롭다. 무섭다. 무대 위에 선 '듣보잡' 뮤지션이 얼마나 잘하나 못하나 바라보는 관객의 눈초리같지. 어지간히 미움 사는 인생이었다.

 

 뭐, 미움받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진짜로 중요한 것은-

 

 아버지는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알겠지?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을 못 받는다.'(요한복음 4:44)."

 

 "왜요?"

 

 "낸들 알까. 하지만 이 나이 먹으니까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떠도는 게 인생이다'. 뭐 그런 뜻 아닐까."

 

 "헤-"

 

 오, '늘 노력은 하셨던'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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