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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피아 게임 II (The Mafia Game II) - 2화

 

 

 

 광고학회 싸이클론의 사무실은 잠시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몇몇은 '게임'의 급한 진행에 불만을 터뜨렸다. 학회장인 최군은 모두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좀 맘에 안 들지만, 광고쟁이가 광고주 말을 들어야지."

 

 그러자 약간 체념하는 분위기가 사무실 안을 감돌았다. 게임 시작까지는 두어시간 남짓 남았다. 벌써 몇몇 이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온라인 홍보물을 빠르게 제작하기 시작했다. '마피아 게임 라이브 방송은 오늘 저녁 여섯 시에 시작됩니다!' 투덜대던 이들도 곧 업무에 착수했다. 최군은 그런 광경을 보며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다. 

 

 "담배 한 대나 피우시죠, 학회장님."

 

 정양이 최군에게 다가와 넌지시 물었다. 최군은 정양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자. 일단 한 대 피우고 열일하자. 흐."

 

 둘은 제2인문학관 뒷문으로 향했다. 정양이 보기에 최군은 벌써 온 몸에 힘이 다 빠져있었다. 걸음걸이가 터덜터덜 너털너털, 모든 걸 불사른 자의 뒷모습이었다. 늘 최선을 다하고 열정적인 최군의 모습에 정양을 포함해 모든 학회원들이 반하곤 했다. 그의 열정은 전염되었다. 광고학회 싸이클론은 교내에서 시간 약속 잘 지키고 양질의 광고를 만들어내는 단체로 정평이 높았다.   

 

 하지만-

 때때로 느껴지는 이 공허감은, 대체 무엇일까.

 

 담배 연기를 내뿜는 최군을 바라보며 정양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양은 이제 최군의 눈빛만 보아도 그의 생각을 알아맞추는 경지에 이르렀다. 정양도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잘 하고 계십니다, 학회장님."

 

 하고 약간 밑도 끝도 없이 말했다. 최군은 정양을 바라보다가, 엷게 웃었다. 정양은 가슴이 약간 콩닥콩닥했지만, 금세 진정시켰다.

 

 어차피 이 사람은, 친해지기 힘든 사람이다. 

 

 뭐든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해내니 인간관계에 별로 아쉬울 게 없고. 친절하고 따스한 성품이라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고. 하지만 자신만의 선이 확실하고 그게 은근히 까다롭다.

 

 온전히 이 사람만의 사람이 되는 것은 무지 어렵다... 정양은 그저 담배연기만 길게 내뱉을 뿐이었다.

 

 

 

 

 "이런 게 어디 있소? 이건 애초에 말한 것과 다르지요!"

 

 K가 공연기획학회의 일원들에게 따져 물었다. 박군은 K를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이 아저씨, K는 서른 중반의 나이에 제어기계공학부에 입학한 늦깍이 학생이라는 것을 참가자 프로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지금은 4학년,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다. 식은땀을 닦으면서도 박군의 머리는 데굴데굴 굴러갔다. K가 대학 입학 전에는 핸드폰 조립 공장에서 일했었고, 뒤늦게 기계를 만지는 일에 흥미가 생겼고, 취미는 우락부락한 체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시집 읽기이고...

 

 "계약 사항과 다르다는 점에서는 사죄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김군이 입을 떼자 '게임'의 참가자들이 웅성웅성하는 것을 멈추고 일제히 김군을 바라보았다. 김군은 두 눈을 두어번 깜박인 다음,

 

 "대신 '출연료'를 30퍼센트 인상해드리겠습니다."

 

 "좋아!"

 

 S가 외쳤다. 좌중은 모두 S를 바라보았다. 그중에는 힐난기도 꽤 섞여 있었다. S는 고개를 움츠리며,

 

 "개인 의견이에요..."

 

 "왜 '게임'을 서두르는 거지요?"

 

 이번엔 뒤늦게 기타를 메고 등장했던 참가자, L이 김군에게 물었다. L의 태도는 어딘가 느긋해 보였다. 그는 기타 가방을 내려놓고 입김을 불며 안경을 닦고 있었다. 김군은 대답했다.

 

 "위에서 요청한 사항이라 그 사유에 대해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마 너 때문일 걸? 김군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L은 씩 웃으며,

 

 "이번 기획에 꽤나 투자금이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입김이 상당한가 보군."

 

 아마 나 때문일 걸? L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W는 이렇게 생각했다.

 

 L, 저 악마 같은 자식이 이판을 망치겠군. 

 

 W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좌중을 향해 말했다. 

 

 "자자, 우리 그냥, 합시다. 어차피 하루 일찍 시작하면 더 빨리 끝내니까 좋은 거지요. 기왕이면 수강 수정 기간인 이 주차 안에는 끝내고 싶잖아요? 마피아 투표는 하루에 두 번 하니까 언능언능 진행한 다음 끝내고 출연료 받읍시다."

 

 W의 사근사근한 어조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나쁘게 말하면 약간 사기꾼 같았다. 어쨌든 좌중은 대체로 수긍했다. "그럼 이제 뭘하면 되나요?" R이 물었다. 김군은 대답했다.

 

 "모두 둥그렇게 앉아 주세요."

 

 모두는 일단 시키는대로 했다. 카메라들도 세팅에 분주했고, 어디선가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채플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학우님들! 저는 사회자로 부름받은 13학번입니다!"

 

 13학번? 화석이네. S는 속으로 큭, 하고 웃었다. 하지만 S는 그 순간 사회자가 자신을 흘깃 바라본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사회자는 와이셔츠의 넥타이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자신을 찍는 ENG 카메라 앞에 섰다. 김군은 사회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군과 박군은 채플에서 퇴장할 준비를 했다. 이제 '쇼'의 연출은 영상학회의 몫이다. 곧 카메라맨 옆으로 한 여학생이 다가와, 게임의 모든 참가자들에게 자기 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번 '마피아 게임'의 연출 PD입니다. 조금 급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시작할게요. 여러분은 사회자의 리드에 따라 진행해주시면 됩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좌중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회자는 모두에게 긴장 풀라는 듯 주먹을 불끈 쥐어 작게 '화이팅!'하고 외치고는, 다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PD는 그런 사회자를 보고, 큐 사인을 주었다.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교내와 교외의 모든 학우님들! 지금부터 마피아 게임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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