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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게임 II (The Mafia Game II) - 1화

 

 

"애쓰지 마라 (Don't Try)"

- 찰스 부코스키 (Charles Bukowski) 의 묘비명 -

 

 

"가장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어버렸고

가장 악한 자들은 열정적인 강렬함으로 가득 차 있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W. B. Yeats) 의 시, <The Second Coming> 중-

 

 

 생각을 정리하고 나아간다.

 

 한 해만의 복학인가, 셔틀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노숙한 그는 자신의 옷에 붙은 먼지들을 털어내었다. 여름밤의 모기들이 군데군데 그의 팔을 깨물어 놓았지만, 그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거운 이펙터 가방과 기타는 잠시 내버려두고,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근처의 빌딩에 들어가 화장실에서 머리를 대충 감았다.

 

 젖은 머리를 하고 정류장에 앉아 있자니, 새 학기를 맞이하여 학생들이 말끔한 옷을 입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 뭐야."

 

 B가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B를 보고 빙긋 웃었다.

 

 "왜 복학했지?"

 

 B는 반가운 마음과는 다르게 약간 눈을 흘기며 물었다. 그는 무심코 담배를 물었다가, 이 곳이 금연구역이란 걸 깨닫고는 다시 담배를 집어넣으며,

 

 "니네, 즐거운 걸 기획하던데?"

 

 B는 약간 눈쌀을 찌푸렸다. '니네'라는 표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학교 구성원 전체를 싸잡아서 '니네'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B는 일단 그런 건 제쳐두고 물었다.

 

 "참여하려고?"

 

 "물론이지."

 

 버스가 왔다.

 

 둘은 버스에 타고 나란히 앉아 그동안의 소회를 풀었다. 그리고 B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녀석은, 침착하게 미친 돌아이.

 

 한편, 학교의 채플에서는 학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광고학회 '싸이클론'이 제안했고, 공연기획학회 '아이리스'가 주관하며, 영상학회 '카메오'가 연출하는,

 

<지상 최대의 리얼리티 쇼, 마피아 게임!>

 

 총 열 세 명의 참가자들은, 편의상 K, L, M, N, O, P, Q, R, S, T, U, V, W 로 지칭한다. 이들 사이에는 총 네 명의 마피아가 있으며, 나머지 아홉 명의 인민들은 그들 사이에 숨은 마피아를 찾아내야 한다. 또한 인민에게는 한 명의 의사가 포함되어 있다. 의사는 마피아에게 지목당한 인민을 살릴 수 있다.

 

 게임 진행은 학교의 채플에서 이루어지며, 참가자들은 채플에서 합숙을 하며 게임을 진행한다. 게임의 승부가 갈릴 때까지 합숙은 끝나지 않는다. 다만 예배가 있는 수요일 저녁 일곱 시와 일요일 아침 열 한시에는 게임을 진행하지 않으며, 참가자들은 자유 의사에 따라 예배에 참석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사전 미팅을 위해 채플에 모였다. 그들은 서로 멋쩍게 인사했다. N은 좌중을 둘러보며,

 

 "그러니까, 우리 중에 누가 마피아가 될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거지요?"

 

 라고 물었다. 좌중은 대체로 고개를 끄덕였다. P가 말했다.

 

 "게임 시작 당일, 사회자가 임의로 선택한다고 들었어요."

 

 R은 주위의 수많은 카메라들을 둘러보며 소감을 말했다.

 

 "무시무시하군요. 전 카메라 울렁증 있는데..."

 

 S는 그런 R을 보고,

 

 "어머, 학우님 프레이즈팀 (praise team) 이시지 않아요?"

 

 R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프레이즈팀 싱어(singer) 입니다."

 

 "채플 예배때 봤어요. 노래 잘 하시던데... 그런데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면서 그동안 용케 무대에 서셨네요?"

 

 "예배 시작 전에 청심환 먹어요."

 

 물론 농담이었다. 하지만 R의 진중한 어조 때문에 별로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S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한 분이 아직 안 오신거죠?"

 

 V가 말하자 몇몇이 약간 흠칫했다. 그때, 채플의 거대한 나무 문이 열렸다.

 

 그가 기타 가방을 메고, 양손에 이펙터 가방과 캐리어를 끌고 들어왔다.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면도를 안 해서 볼품없이 난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가느다랗고 섬세한 손가락, 둥근 뿔테 안경 너머로 느껴지는 강렬한 눈빛...

 

 W가 말했다.

 

 "지옥에서 악마가 돌아왔군."

 

 

 

 

 박군은 제1인문학관 복도를 헐레벌떡 뛰어가고 있었다. 비록 복도가 약간 서늘하다 해도, 한여름의 더위는 그에게 엄청난 열기를 선물했다. 박군은 이마의 땀을 닦아가며 공연기획학회 아이리스의 학회 사무실 문으로 돌진했다. 

 

 "대외비!"

 

 박군은 문을 벌컥 열고 사무실 안의 사람들에게 외쳤다. 이군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컵라면을 먹다가 사레에 들릴 뻔했다. 이군은 잠시 콜록거린다음 박군을 바라보며,

 

 "지금?"

 

 "헉헉, 그래!"

 

 "뭔데?"

 

 박군은 그제야 숨을 고르며,

 

 "'하나 - 오늘 당장 마피아 게임을 시작할 것.'"

 

 "오늘? 시작은 내일이잖아?"

 

 "'이유는 묻지 말 것.'"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급하게? 이군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두 번째는?"

 

 "'둘 - 마피아를 한 명도 설정하지 말 것.'"

 

 "뭐라고?"

 

 이군은 소리쳤다. 이게 무슨 소리야? 마피아를 한 명도 설정하지 말라고? 그럼 무고한 인민들끼리 싸우다 죽게 만들라는 거잖아? 그런 비참한 쇼를 진행한다고?

 

 "왜, 왜, 그런 결정을?"

 

 "우리가 알 게 뭐야. 까라면 까는 거지."

 

 옆에서 듣던 송군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저... 오덕 애니메이션밖에 볼 줄 모르는 진따 새끼... 이군은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렸다. "낄낄낄... 재밌겠군." 이군의 투덜거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군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숨이 많이 진정된 박군은 사무실 안의 다른 한 사람, 김군을 바라보았다. 김군은 모든 대화를 들으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군이 김군에게 물었다.

 

 "어떡할까?"

 

 김군은 허공을 응시하며 가만 생각에 잠겨있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일단은' 시키는대로 하자."

 

 "'일단은?'"

 

 박군이 물었다. 김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천천히, 하지만 무게감있는 어조로,

 

 "그래, 하지만-"

 

 "하지만?"

 

 허공을 응시하던 김군의 눈이 잠깐 번쩍였다. 김군은 고개를 약간 삐딱하게 꺾으며, 대답을 마무리했다.

 

 "시키는대로 순순히 나가지만은 않을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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