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마피아 게임 II (The Mafia Game II) - 17화

 

 

이 학교에 있을 이유가 없어.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도로에는 늦봄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나는 캐리어를 끌어안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창밖 풍경, 건물들과 사람들은 늘 그렇듯 무심했지만, 이상하게도 버스 창가에서 바라보면 그 풍경이 아름다워 보인다. 무심한 아름다움이다.

 

버스는 터미널에 도착했고 나는 캐리어를 끌고 내렸다. 터미널의 발권 창구에서 서울로 가는 티켓을 끊고, 대기실에 앉아 여전히 멍하니 있었다. 단지 배가 조금 고플 뿐이었다.

 

"헉... 헉, 한양아, 이대로 도망치기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숨을 거칠게 헐떡이고 있었다.

 

"내가 그랬지. 너를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T 오라버니."

 

"그런데 이대로 도망쳐? 뭐, 자퇴? 자퇴!"

 

"......"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오라버니를 마주보고 섰다. 원피스 자락을 잘 정돈하고, 말했다.

 

"나는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

 

"윤리위원회에 진정을 냈고, 경찰에도 신고했어요. 하지만 윤리위원회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경찰은 '다 그런 것이다' 하고 넘어갔어요. 그 사이... 그 놈, 은 이상한 소문을 퍼뜨렸어요. 나는 지금 나락이예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요."

 

"내가! 내가 조금만 더 하면! '언론사'를 하나 만들 수 있어!"

 

"......"

 

"독립언론이야. 절대, 그 어느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오라버니."

 

"그러니까 제발, 가지 마, 가지 마. 부탁이야. 자퇴 취소도 가능..."

 

"나를 기억해주세요."

 

나는 반지를 빼내어 그에게 건넸다. 그의 슬픔과 분노에 찬 눈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뒤돌아섰다. 그래요, 오라버니. 나 이기적이예요. 욕해 주세요. 미안해요. 하지만 더 이상-

 

T는 그렇게 회상에 잠겨 있었다. 에구, 빌어먹을 세상. T는 입을 삐죽거리며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기자님들아,

저 빌어먹을 놈처럼 되지 마

아셨지?

 

"이거, 고양이 소리네?"

 

"으응?"

 

한편, E 일행은 U가 채취한 소리를 듣고 잠시 혼란에 빠졌다. F는 "이거 고양이 울음소리잖아." 하고 아주 간단하게 확신했고 E는 진짜 고양이 울음소리가 맞는가 하는 쓸데없는 고민에 빠졌다. 진짜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누가봐도 고양이가 아주 작게 우는 소리였다.

 

"아니, 무슨, 어떻게 고양이가 채플 안까지 들어왔지?"

 

C도 어안이 벙벙하여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E는,

 

"아닌가? '왜' 들어왔는지가 중요한 건가?"

 

하고 말했고, F와 C는 더욱 어안이 벙벙해져서 E를 바라보았다.

 

"지금 카메라에는 고양이 안 잡히지?"

 

C는 그렇게 자문하듯 말하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어디 숨어있는지, 녀석이 카메라 각도를 아는건지, 잡히지 않았다. 다만,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는... E는 모니터 속 U의 자세를 바라본 다음,

 

"S 학우님 방향이겠는데."

 

하고 추정했다. 그렇네. C는 소리의 방향성을 고려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녀석은 S 학우님의 등 뒤쪽 어딘가에 있는 모양이다. 왜 들어왔... 아니,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귀여운 상황이네."

 

F가 내 생각을 정리해주었다. 그렇다. 귀여운 해프닝이었다. 가끔 축구장이나 야구장에 고양이가 난입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곤 하는데, 이것도 그런 상황인 것 같았다. 아직 주최측에서는 모르는 것 같았다. 저 고양이는 다행히 '경기'를 방해할 정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일단 게임에 집중해 보자."

 

E가 다시 주의를 환기시켰다. 세 친구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T가 어떤 의견을 펼치고 있었다.

 

"...해서 말이죠, 우리, 이번 '마피아 투표'는 한 번 미루는 게 어떨까요?"

 

"왜요? 흠..."

 

S는 물어보면서도 약간 알겠다는 눈치였다. T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거, 좀 이상한데요, 지금 말이죠, '의심' 가는 사람이 없어요."

 

"으으음..."

 

"마피아가 그렇게 연기를 잘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렇잖아요?"

 

U는 내색하지 않으려 최대한 애썼다. 그런데, 지금 '마피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 했다는 게 나중에 밝혀지면 나 큰일날 것 같은데... 밝혀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T는 계속 말했다.

 

"지금 상황이 되게 웃기지 않아요? 마피아가 누군지보다 '의사'가 누군지 찾고 있는 이 코믹한 상황이?"

 

T는 L을 바라보았고, L은 고개를 끄덕였다. E도 고개를 끄덕였다. 합리적인 논리였다. C는 비실비실 웃었고 F는 배를 잡고 폭소를 터뜨렸다. E도 빙긋 웃었다. 그리고 E는 L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건 그저 순리일 뿐이야

내재되어 있는 체제의 모순이

스스로 그 모습을 폭로하고 있는 거야

 

C는 말했다.

 

"진짜... 개지랄났네."

 

 

 

--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