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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피아 게임 II (The Mafia Game II) - 13화

 

 

 

사회자가 도착했다.

 

그는 예의 그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말끔하게 빗어넘긴 올백 머리가 반짝반짝 빛났다. 사회자는 모두에게 인사했다.

 

"잘 주무셨어요들?"

 

방금 일어난 사고 때문에 모두 그다지 반갑게 인사하지만은 못했다. 사회자는 고개를 약간 갸우뚱했다. 그때 공연기획학회의 이군이 그에게 다가가 잠시 귀띔해주었다. 사회자는 그제서야 무슨 일이 있었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자는 짐짓 활기차게 말했다.

 

"자, 괜찮아요. 기왕 하는 쇼, 시청자들에게 재밌는 웃음을 전해드립시다!"

 

S를 비롯해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완전히 수긍하지 않는 몇몇도 있었다. M의 경우에는, 지금이라도 게임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런데 그러려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지...? 젠장, 안 되잖아.

 

"십 분 후에 시작할게요!"

 

PD가 말했다. "네!" 참가자들은 대답했고, R은 다시 긴장이 되어 바짓자락을 움켜쥐었다. 한야신문사의 기자들도 카메라와 노트북을 가지고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시작합니다!"

 

PD가 말하고 사회자에게 큐 사인을 주었다. 시작되었다.

 

"네, 안녕하십니까? 전국에 계시는 모든 동문 여러분, 그리고 교내와 교외에 계신 선배님, 후배님들. 마피아 게임 2일차, 2회차 시작합니다!"

 

채플 안에 경쾌한 음악이 울려퍼졌다. 빰빰빠빰!

 

음악이 서서히 잦아들자, 이제 카메라가 내는 약한 전기음만 채플 안을 가득 메웠다. 어디선가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도 났다. 긴장 속의 침묵이다. 재밌는 침묵이네. 하루 같이 지냈다고 이들 사이에 어떤 '케미스트리'도 보이고. 사회자는 속으로 웃었다.

 

침묵을 깨고, W가 L에게 물었다.

 

"L 학우님. 어제 마피아의 밤에, '의사로서' 누구를 지목하셨나요?"

 

예리한 질문이었다. L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저 이 대답을 모면하고자 '저 의사 아니예요.' 라고 말하면, 이후의 내 말은 어떤 힘도 가지지 못하겠지. 내가 의사든 아니든 나는 '의사'로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

 

L은 한 학우를 가리켰다.

 

"저 후배님이요."

 

R은 깜짝 놀랐다. 나를? 왜?

 

"저... 저를요? 왜?"

 

L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W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예를 들면, '사실 저는 알고 있었거든요. R 학우님이 진짜 의사라는 걸." 이라고 말하면 근거 없는 조금 가벼운 말이 되고, '그냥 감으로요. 왠지 R이 죽을 것 같았어요' 라고 말하면 무책임해 보인다. 명심해라, 무슨 말을 해도 먹잇감이 된다. 저 W 녀석은 그런 녀석이었지.

 

그러나, 만약 침묵한다면-

 

W는 L을 진중히 노려보았다. L은 속으로 웃었다.

 

 

그때, 찜닭 맛있었지.

 

야외 공연을 마치고, 옛 동료들과 구내식당에서 야식을 먹었다. 저 녀석, P는 요즘 뒤에서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지 잠깐 자리를 비웠고, 나는 그릇에 얼굴을 쳐박고 찜닭을 먹다가 밑에 깔린 신문지에서 기삿조각을 하나 읽게 되었다.

 

 [교목실, 프레이즈팀에 권고... "권세에 복종하라."]

 

'권세에 복종하라.' <로마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모든 권세는 신(神)으로부터 나오니 그 권세에 복종하라는. 오늘날의 기득권 세력이 가장 즐겨 써먹는 구절이다. 나는 동료들에게 물었다.

 

"요즘 프레이즈팀에 무슨 일 있어?"

 

"왜?"

 

"교목실에서 뭐라고 했다네?"

 

"...아! 그거지. 프레이즈팀의 한 싱어가 생명공학부 최교수의 강의의 이론상 문제점을 지적했다가-"

 

그러자 다른 동료가 말을 덧붙였다.

 

"그래! 맞아! 그랬다가 대판 싸우고 윤리위원회에 회부되었지."

 

"그래?"

 

나는 기사의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사진은 최교수와 뭔가 거칠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 학우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번엔 눈을 치켜뜨고 그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 학우가 바로...

 

 

"C, 저 R 학우가 예전 최교수 사건 그 학우지?"

 

한편, 채플 안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E는 C에게 물었다. C는 대답했다.

 

"맞아. 그때 신문사도 최교수 편드는 보도를 하고, 그리고 의외인 건, 교목실에서까지 반응했어."

 

"프레이즈팀같이 홀리(holy)한 집단의 구성원이 언홀리(unholy)한 짓을 벌였으니까..."

 

F가 거들었다. E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살짝 기울인 다음,

 

"혹시 최교수하고 교목들하고 라인이 붙어 있나?"

 

"응? 글쎄, 그럴 수도..."

 

F는 말꼬리를 흐렸다. E는 고개를 똑바로 한 다음, 혼잣말을 하듯, 하지만 빠르게 중얼거렸다.

 

"R 학우님은 '교회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싶어서 이 게임에 참가했다고 말했지."

 

"그랬지."

 

C가 응답했다. E는 말을 이어갔다.

 

"저 고아(古雅)한 R 학우님다운 표현이지만, 그 이면에는-"

 

"...아?"

 

C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교목실에 엿을 먹이겠다'?"

 

E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F는 눈을 꿈뻑거리며,

 

"서, 설마? 겉보기에는 유약해 보이는데..."

 

"아마... 본인도 자각 못할 거야."

 

E는 계속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F는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복수'다. 복수... 나는 복수를 꿈꿨던 적이 있나? 그저 두려웠지. 친구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동문들의 수군대는 말이 두려웠다. 만약 J를 비롯한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을지도...

 

F는 떨리는 손을 뒤로 깍지 낀 다음, E에게 뭔가 물으려다가, 말을 삼켰다. 그리고 모니터 속의 R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덜덜 떨면서, '복수'라니...

 

"어?"

 

그때, R보다는 L을 보고 있던 C와 E가 반응했다.

 

카메라는 이제 본격적으로 L을 잡고 있었다. L은 핸드폰으로 잠깐 메시지를 확인하려던 모양, 그런데 핸드폰을 바라본 그 모습 그대로 굳어 있었다. W가 말했다. "L, 내 말 듣고 있어?" L은 반응하지 못했다. S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저기... L 선배님?" "......"

 

 [새로운 메시지 : 발신인 - 성양]

[L, 오늘이 복학한지 이틀째인가?

안 좋은 소식을 전해주게 되어서 미안해

그 청년 노동자 있잖아,

그 친구의 아버님이, 어제 스스로 생을 마감

하셨다고 해.

일단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연락했어. 그렇게 알고 있어]

 

L은 말했다.

 

"응? 뭐라고 했어, W?"

 

W는 조금 티나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혹시 네가 진짜 '의사'가 맞냐고 물었어. 그리고 맞다면, 다음에 누구를 살릴 것인지-"

 

아, 그래? 다음에 누구를 '살릴' 거냐고?

글쎄, 다음에도 우리 착한 R이나, 아니면 외로운 P를...

아니, 아닌데

그래, 아니지

내가 뭔데?

 

 

L은 생기 잃은 눈으로 W를 바라보았다. 심상찮았다. 모든 게임 참가자들과, PD를 비롯한 스태프들과, 기자들과, E 일행까지 숨죽여 L을 바라보았다.

 

"저기, 저, 게임이 조금 과열되는 것 같으니까, 잠깐 쉬었다 할까요?"

 

사회자가 끼어들었다. 그러자 모두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아, L 선배님, 표정이 너무 무서워. S는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 M은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그리고 Q는 일어나서 L에게 다가갔다.

 

"저, 학우님."

 

"...예."

 

L은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Q를 바라보았다. Q는 입을 일자로 가볍게 다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예요. 힘내시라고요."

 

내 진심이 전해지길 빕니다. 다행히 L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Q는 안도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과 함께, 잠깐 시끌했던 수다가 사라졌다. L은 어느새 집중된 어조로, 시선을 W에게 두며 모두에게 말했다.

 

"다음에 누구를 '살릴' 것이냐고요?"

 

성양에게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나는 멍해졌다.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깊게 생각하면... 미친다. 그러지 않게 뇌가 차단막을 내리는 것이다. 그 대신-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반드시 복수해라

하지만,

하나 명심해라

그 타이밍은 하늘의 것이다.'

 

오, 아버지.

 

L은 말했다. / Q는 생각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씹새야."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씹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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