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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피아 게임 II (The Mafia Game II) - 15화

 

 

덥다고 했는데 선선하다.

 

고백했다가 차였던 어느 날, 이 곳에서 밤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왜일까, 오늘 불현듯 그 맥주 맛이 생각났다. 아침부터 술이라니, 그 녀석을 닮아가나. 나는 어느새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맥주 캔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가, 뚜껑을 땄다. 딸깍, 하는 소리, 그리고 곧 스아아아, 하는 청량한 소리가 귀를 휘감았다.

 

에라, 한 모금, 모르겠다, 두 모금-

 

'차가운 불'은 텅 비어있는 속을 화끈하게 강타했다. 취기가 올라 눈 앞을 어지럽혔다. 비가 한 두 방울 내리다가, 곧 보슬보슬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에도 살포시 내려앉았다. 나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주륵, 하며 방울이 일렁였다.

 

그때, 우리는 104호를 지켰다.

 

104호는 지켰지만, 그후 우리는 여러 번의 평지풍파를 맞이했다. 특히 그 녀석을 향한 신문사의 공격은 집요했다. 직접적으로 대놓은 공격은 아니었지만 기사 제목이 주는 암시가 있었다. 동시에 녀석은 공연에서 설 자리를 잃어갔다. 항간에는 연출진에서 - 또는 기획팀에서 - 녀석을 배제하고 차별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요주의 인물', 그렇게 배 아프게 뛰어난 실력을 가진 녀석이 재능을 펼칠 기회가 없다.

 

하지만 녀석은 언제나 침착했다.

 

녀석은 직접 '팀'을 만들었다. 그는 학교에서 '게릴라 연극'을 기획했고, 실제로 저번 채플 앞 기습 공연은 꽤 화제를 낳았다. 녀석은 이제 기획자이자, 연출/감독이었다. 다재다능한 실력, 시류(時流)를 읽는 능력,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매력, 그 매력은 동물들도 좋아하는지 어디선가 들개 한 마리와 길고양이 한 마리가 합류했다. 아, 웃겨.

 

나는 핸드폰을 꺼내,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녀석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E, 우리 전(前) 과대표님 I가 지금 어디 있지?"

 

"채플 뒤뜰, 카메오(영상학회)의 한 친구하고 같이 있어. 너도 올래?"

 

"흐."

 

하여튼 웃겨, '너도 갈래?' 라고 하지 않고 '너도 올래?' 라고 한다. 젠장, 배 아파. 나는 말했다.

 

"나도 갈게."

 

"D, 이건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말인데."

 

"?"

 

'예전부터' 라고 하지 않고 '옛날부터' 라고 한다. 녀석은 같은 시간(時間)도 훨씬 다층적으로 보내는 게 틀림없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도 그에게는 까마득한 옛날인 것이다. 젠장, 배가 계속 아파, 술 괜히 마셨어. 녀석이 말했다.

 

"너의 '워치 독(watch dog)'에 신세를 많이 졌다."

 

"......"

 

"...고마워."

 

'고마워'라고 말하면서 부끄러워하지 마, 이 오만한 녀석아, 머리 좋고 실력 좋으니까 남들한테 신세지는 것에 미안해 하는 경향이 있어, 시건방진 녀석. 나는 침을 한 번 퉤 뱉은 다음,

 

"됐어. 갈게."

 

"D! 잘 지내?"

 

수화기 너머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심장이 조금 아려왔다. 나는 말했다.

 

"F에게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전해 줘."

 

"알았어."

 

"출발한다."

 

"응."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남은 맥주를 빠르게 입 속에 털어놓고,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녀석이 신문사에게 공격을 받고, 어느샌가 교내 방송국도 그에 슬그머니 동조하던 날들, 나는 언론정보학을 복수 전공 신청했다. 연극은 많이 해왔지만 언론학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고, 자랑은 아니지만, 올 A+를 받았다. 그리고 일종의 '언론 감시 기구팀', '워치 독(watch dog)'을 만들어 대표가 되었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우리는 권력을 감시하지 않는 언론을 감시한다.

 

그 모든 과정이 순전히 E 녀석을 도우기 위해서였냐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겠다. 다만 그런 꼬라지를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었을 뿐이다.

 

나는 벤치에서 폴짝 일어났다. 슬슬 가보자. 우리 팀의 단체 채팅방에 다음 안건에 대해 '지시'를 내린 다음, 걸음을 옮겼다. 백사장의 젖은 모래가 신발 밑창에 부드럽게 부딪혔다. 좋은 느낌이었다. 나는 앞머리를 쓸어 올려 빗방울을 털어내었다. 물기가 손가락 마디마디 굳은살을 적셨다. 이번엔 그 물기를 청바지에 슥 닦았다.

 

일단 I 일행과 합류한다

가 보자고, 지구 최강 쌀쌀맞은 배우를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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