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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

 잠에서 깬 F는 창문을 확인했다. 어, 열고 잤네. 춥더라. 응? 괜춘. 걱정은 안 해도 돼, 쇠창살이 달려 있거든. 근데 미관이 영 안 좋아. 감옥 같애. F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는 말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린 다음, 느리게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찌뿌드드한 몸을 깨웠다. 학교 가기 싫다. F는 이불을 어깨에 두르고 잠시 '명상'을 - 또는 멍때리는 일을 - 했다. 오만 생각들이 지나갔다. 먼지를 가라앉히는 기분으로 하나씩 생각을 정리했다... 어젯밤 설핏 잠들기 전 머릿속에서, 무슨 '영상'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웬 낯선 사람들이 - 심지어 하얀 피부 외국인까지 - 등장한 이상한 영상이었다. 

 머릿속이 너튜브가 된 세상에서 살고 있나 봐, 우리.

 F는 그후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간단하게 세안하고 양치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반지하 위를 올라와 대문 밖에서 줄넘기를 하고, 다시 들어와 씻고 밥 먹고 수업 갈 준비를 했다. 이따가 저녁 연습 시간에 고 녀석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어.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며 F는 잠깐 그렇게 혼잣말했다.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그리고 핸드폰이 울렸을 때 F의 미소는 흐뭇함에서 설렘으로 변화했다가, 작은 실망으로 다시 바뀌었다. '썸남'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충격을 받은 F는 잠시 충격에 빠졌다. 그럼 1교시 수업은 '공강'이라는 얘기... 아니, 어머,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거, 난리나겠는데? 사람 잘리는 일이 이렇게 쉽게 결정될 수 있다는 거야? 
 
 이게... 
 '권력'? 

 현재 교수님의 심사가 궁금하다. 상부가 악의적으로 퍼뜨렸을 워딩이 분명한 '조교'라는 교수님의 별명은 별로 공감을 얻지 못했다. 교수님은 학생들의 고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는 분이었다. 물론 똑똑한 교수님들은 많다. 하지만 그 교수님처럼, 뭐랄까, 매일매일의 공기의 배치랄까, 그날그날마다의 분위기랄까,

 수업이 진짜로 수업이 되는...

 F는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공강이 분명함에도 집을 나섰다. 그 다음 수업은 4교시니까 꽤 텀이 빈다. 모르겠다. 카페라도 가든지. 버스 차창 밖을 바라보며 F는 이런저런 상념에 잠겼다. 이럴 때 그 녀석이라도 있었으면, 녀석의 기타소리는 꽤 위로가 되는데,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벚꽃이 핀 캠퍼스 위의 하늘은 찌뿌드드했다. 

 카페 또는 도서관쪽으로 방향을 잡으며, F는 하릴없는 걸음걸이로 걸었다. 예상했던 대로, 캠퍼스를 오가는 학우들이 조성하는 공기는 다소 조심스럽고 무거웠다. 그러나 크게 억눌린 기색은 없어 보였다. 젊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의 태도를 취한다. 빠른 수습과 회복... F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 또는 위장된 멍을 때리며 - 누군가의 뒤를 홀연히 밟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F는 누군가의 등 뒤에 있었다. 

 "안녕?"

 F는 먼저 인사했다. 예전에 같이 수업을 같이 들은 적이 있는, 그다지 친하지는 않지만, 관심을 보여봤다. 그가 쪼그리고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려 F를 바라보았다. 선한 인상. 이런 친구였나. 그는 미소지었고, F는 잠깐 긴장했던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너 축지법 쓰니?"

 "응?"

 "아까 저 뒤에 있었는데."

 '친구'는 약간 새침한 어조로 말했다. F는 그랬나, 하고 잠깐 생각하다가, 곧 자신이 방금 상당히 '정줄'을 놓은 상태였음을 깨닫고 경악해서 입을 크게 벌렸다. 어, 그런데, 꽤 기분 좋은 '정줄 놓음'이다. 

 '치료적 이중구속'?

 "후후후... 정체를 들켰군. 사실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이거 봐봐."

 '친구'는 F의 농담의 의미를 안다는 차원과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는 차원을 겹쳐 보이며 '꽃'을 가리켰다. 아마, 저건... 저 꽃 이름이 뭐더라?

 "진달래 예쁘지?"

 "그래. 예쁘네."

 F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라 그저 맞장구쳤다. 이런 친구였나. 너, 꽃이름을 외우면서 어떻게 이 학교에 왔니? 그럴 시간에 영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야-

 F, 그럴 시간에 영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라.

 F는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머리를 작게 흔들고, 다시 '친구'를 바라보았다. '친구'는 F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F는 예의 그 '기분좋은 정줄놓음' 상태로 다시 바뀌었다. F는 '친구'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았다. "이거, 걔한테 알려 줘. 피었다고." "걔? 아, 우리 '꽃 박사님'? 알았어. 흐." "진달래 꽃 동요 알아?" "동요? 아!"

 산에 산에 진달래꽃 피었습니다
 진달래꽃 아름따다 날 저뭅니다
 한 잎 두 잎 꽃 뿌리며 돌아옵니다
 뻐꾹새 먼 울음도 들려옵니다   



 - 12.

 "저 학우는 별로 감시할 필요 없어 보이는데요. 그저 평범한 여학우 아닙니까."

 "주위를 말리라셔서."

 "예?"

 "모르나? 꽃에 물 안 주고 햇빛 안 주면 어떻게 돼?"

 "말라 죽죠."

 "그런 거야. 고 녀석을 최대한 납작하게 눌러야지. 마른 오징어처럼."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참, 그런데... 그렇게까지."

 "그리고 다른 지시사항도 있어서."

 "뭡니까?"

 "아. 남녀상열지사. 여기까지. 근데 떡볶이 말고 다른 건 없나. 좀 지겹다."

 "이 동네는 작아서 이미 먹을 만한 건 다 먹은 것 같습니다."

 "일 끝나면 서울 가자. 사 먹을 것 널렸다."

 "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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