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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오늘 저녁에 조명 셋업 좀 도와 줘.”

 

 “귀찮…”

 

 “오만 원.”

 

 “…몇 시에 하는데?”

 

 "깍쟁이 같은 놈."

 

 E는 벌써부터 오늘 밤 술상에 오를 안주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김치전이 어떨까? 이거 벌써부터 군침이 싹 도…

 

 “아, 그리고, E,”

 

 E는 표 양을 바라보았다. 표 양은 E를 마치 사랑스러운 아기 바라보듯 하며,

 

 “…고마워.”

 

 “뭐가…?”

 

 “뭐긴, 임마. 104호, 104호.”

 

 “…왜 때문이지?”

 

 “아오, 의뭉스럽긴! 너 아니었으면, 시발, 우리 이번에 공연 못 했어.”

 

 그게 나 때문인가. E는 집게 손가락으로 볼을 긁었고, 표 양은 그런 E의 모습을 여전히 웃는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간다. 이따 여덟 시까지 104호로 와!”

 

 하고 사라졌다. E는 씩씩하게 걷는 표 양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또 비까지 온다.

 

 이런 날 전기를 만져야 하다니. E는 6교시 수업이 한창인 가운데, 강의실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었다. 졸리고 나른하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면 요새는 잠을 그다지 푹 자고 있지 못하다. 다소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잘 멈춰지지 않는다. 쓸데없이 번져가는… 잡념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만약 무대에서 배우가 이런 상황에 빠져들면 그 날 그 극단은 관객들에게 티켓값을 모두 환불해 줘야 할 것… 비가 온다. 비 오는 날의 그다지 좋지 않은 추억이 있다…

 

 “여기까지. 좋은 주말 보내도록.”

 

 “와!”

 

 교수의 말에 강의실의 분위기가 일순 출렁였고, 그제서야 E는 자신이 잠깐 졸았음을 깨달았다. 수업이 끝나버렸다. E는 자신의 노트를 바라보고, 그 충만한 여백의 미에 잠깐 감탄한 다음, 짐을 싸고 강의실을 나왔다.

 

 104호에 가기 전에 매점에 들러 김밥 한 줄을 샀다. E는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로는 은박지를 윗부분만 까서 김밥을 하나씩 오물거리며 104호로 향했다.

 

 표 양과 동료들은 벌써부터 분주했다. “왔어?” E는 고개를 끄덕이곤 물기를 털고 가방을 관객석 앞 쪽에 던져놓고 일단 사다리 하나에 올라 탔다. 동료 한 명이 아래에서 조명을 건네어 주었다. E는 오늘따라 김밥이 뭔가 부실하다는 생각을 하며 조명을 설치해 갔다.

 

 “으응?”

 

 한 시간 여 후, E는 모두에게 자신의 의아함을 전달했다. 표 양이 물었다.

 

 “왜?”

 

 “여기, 왜 콘센트가 막혀 있지?”

 

 “?”

 

 표 양은 E가 올라타 있는 사다리 아래로 와 E가 가리키고 있는 부분을 보았다. 잘 안 보이는데?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E는 여전히 콘센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 쑤실 만한 거 없냐? 뭐 낀 것 같아.”

 

 “젓가락?”

 

 “식당에서 좀 쌔빌 수 있나?”

 

 쌔비긴 뭘 쌔벼. 곧 표 양의 동료 중 하나가 식당에서 젓가락을 한 벌 가져왔다. E는 그것을 받아들고 젓가락 하나를 콘센트 구멍에 쑤셔넣었다.

 

 설마, 내가 이러고 있는 동안 저 조명 오퍼(operator)가 조명을 올리진 않겠지?

 

 E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컨트롤 룸에 있는 조명 오퍼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그저 가만 앉아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성실한 학우인지도 모른다. 조명 작업 시간에 컨트롤 룸에 있으면 좀 지루해서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기라도 할 텐데…

 

 그 때, 젓가락 끝의 감촉으로 E는 콘센트를 막고 있는 이물질을 발견했다.

 

 “됐네.”

 

 “됐어?”

 

 “어, 근데 잘 안 빠진…”

 

 “됐어. 안 되면 선 늘여서 다른 포트에 연결하면 돼. 떡볶이 좀 먹고 해.”

 

 누군가가 떡볶이를 싸 들고 방문한 모양이다. E는 으응, 하며 이마에 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표 양의 어머니께서는 최근 분식집을 열었다고.

 떡볶이를 사 들고 온 저 남학우가, 표 양의 남자 친구로군. 이 빗속에. 반갑습니다

 그리고 컨트롤 룸, 이 자식…

 

 E는 젓가락을 콘센트에 꽂아넣은 채로 재빠르게 말했다.

 

 “떡볶이 맛있냐?”

 

 E는 재빠르게 사다리를 내려 와 일행이 어느새 오물거리고 있는 떡볶이로 향했다. 그리고 먹었다. 맛있었다. 표 양의 어머니께서 실력이 좋으신가. E는 표 양의 남자 친구와도 간단히 통성명을 했다. 상당히 성실한 인상이었다. E는 표 양의 남자친구가 야생마 같은 여자친구를 상당히 잘 컨트롤 할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을 표명했고 곧 표 양의 살기 어린 눈빛을 받아내야 했다. E는 다시 한 번 집게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이다가, 오랜만에 담배가 땡겨서 밖으로 나갔다.  

 

 비가 점점 세차게 온다.

 

 다시 돌아 온 E는 컨트롤 룸을 흘깃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E는 마치 컨트롤 룸에 숨겨놓은 술이라도 있는 것처럼 휘적휘적 들어가서, 조명 콘솔을 바라보았다.

 

 “……”

 

 E는 컨트롤 룸을 나와 사다리로 올라가 포트에 꽂아넣은 젓가락을 빼내었다. 그리고 젓가락 끝을 바라보려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약간 타는 듯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악(惡)은 성실하다.

 아, 물론 성실하다고 악(惡)은 아니다.

 

 

 

- 3. 

 

 “지금 104호에 있습니다.”

 

 “참, 동선 파악이 쉬운 학우네. 뭐하러 이런 짓을 하는 거야?”

 

 “까라면 까야지 별 거 있습니까.”

 

 “J는 어디 있지?”

 

 “계속 대청 해수욕장에 머물러 있습니다.”

 

 “주시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왜?”

 

 “…그… 떡볶이 좀 먹고 하시지요?”

 

 “……”

 

 “……”

 

 “…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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