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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나는 그에게 물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옳은 거요?”

 그는 여전히 웃으며 말한다. “흉년도 아닌데 왜 사람을 잡아먹겠어요.”

 

 - 루쉰, <광인일기(狂人日記)>

 

 

‘귀신이 씻나락을 까먹는다!’

 

- 어느 농부의 비명 같은 외침 -

 

 

 - 5.

 

 E는 자기 집 옥상에서 두리번거린다.

 

 옥상이라야 4층짜리 건물이니 얼마나 높겠냐 싶지만, E는 마치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잠깐 하늘을 바라보았다가, 곧 땅을 본다. 이웃들의 집의 모양들을, 그 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들과 소리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본다.

 

 까마귀들이 울며 날아간다. 거참, 반오십을 넘게 살면서 이렇게 까마귀들이 많이 울던 시기는 처음 본 것 같다. 녀석들의 울음소리에서 뭔가 불안함이 느껴진다… E는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돗대다. 이상하다, 담배가 늘었어.

 

 곧 옥상에서 내려와 방으로 돌아온 E는 학교에 갈 준비를 한다. 물 마시고 밥 먹고 씻고 양치하고 가방을 싸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1층 현관을 나서 오늘 마주하는 첫 사람과 접속했을 때 E가 들어먹은 것은 욕이었다.

 

 “씨발…”

 

 행인이 누구한테 말하는 것인지 모를 욕을 내뱉고 지나갔을 때 E는 잠시 자신이 무중력 공간에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놓지 마, 정신줄!’ E는 자신을 수습하고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걷는 동안 골목 풍경을 본다. 사람들은 알뜰살뜰히도 자신만의 화단을 가꾼다. 나는 꽃 이름은 잘 모르지만… C에게 물어볼까? 녀석은 꽃 박사니까. 길고양이가 무심한 눈으로 E를 바라보다가 무심하게 제 갈 길을 간다. 한 쪽 구석엔 어느 취객이 만든 작품이 살포시 놓여 있다. 어젯밤 광란의 밤을 보냈나 보군. 취하면 토한다. 취하면 반드시 토하게 되어 있다. E의 곁으로 어느 배달 노동자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정류장에 도착한 E는 곧 버스를 탔다. 아침 이른 시간이지만 좌석에는 자리가 거의 없다. E를 알아본 몇몇 친구들이 손인사를 한다. “여어.” 어느 여학우는 ‘삼김’을 먹고 있다. 저게 그녀의 아침인 듯 하다. E는 어느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우물우물… 우물우물…

 

 E는 창가에 기대놓은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먹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어? 처음이다? 반오십을 넘게 살면서, 이런 충동이 든 것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E는 그런 충동을 느낀 자기 자신에게 놀랐다.

 

 우물우물… 우물우물…

 

 정신 차려… 아, 아까 그 취객의 작품이 왜 지금 생각나는 거야. E는 속이 울렁거렸다. 큰일났다. 취하면 토한다. 취하면 반드시 토하게 되어 있…

 

 우물우물…

 야, 이 X…!

 

 귀신이 씻나락을 까먹는다!

 

 E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마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던 이 문장이 왜 지금 생각나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뜨거운 인두로 지진 것처럼 뜨끔하게 정신이 들었다.

 

 E는 창가에 기대놓은 팔을 조용히 내렸다.

 

 그리고, 머리를 슬며시 좌석 등받이에, 편안하게 기대놓은 다음, 귀를 쫑긋했다.

 

 진짜…존나싫어…짜증나…미친거아냐…개싫어…개미친거아냐…개짜증나…

 

 맨 뒤, 이른바 ‘일진’ 자리에서 들리는 우물우물 소리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귀신이 씻나락을 까먹을 때 내는 우물우물 소리다. 씻나락이 없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친다. 그래서 어느 농부는 저 우물우물 비슷한 소리만 들려도 발작하는 노이로제에 걸렸었다고… 어쨌든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면, 나는 그저 바쁘게 아침을 때우고 있을 뿐인 저 여학우에게 충동적으로…

 

 버스가 학교에 도착하여 학우들은 차례차례 내렸다. E는 뒤쪽에서 학우들이 내릴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일진’들은 아직 안 일어난 기색이다. 계속 기다렸다. 그들은 아직도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학생들! 안 내려?”

 

 버스 기사가 짜증스런 기색으로 외쳤다. E는 외쳤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다리에 쥐가 나서!”

 

 “에잉…”

 

 ‘일진’들이 일어나서 E의 곁을 지나갔다. ‘목이 곧은 이들’… E는 다리를 연신 주무르며 그들의 얼굴을 흘깃 보았다. 표정이 경직되어 있고 활기가 없다… 그들이 내뱉은 말의 파장은 아마도 지금 자신들을 해치고 있을 것이다.

 

 E는 잠시 후 일어나서 버스 기사에게 죄송하다고 사죄한 후 내렸다. 발에 땅을 내딛으니 다시 무중력 공간에 있는 것 같은 기분. 춥다. 날이 흐릿하니 비가 올 것도 같은데. E는 옷깃을 여미며 캠퍼스 거리로 진입했다. 기숙사 근처에서는 벚꽃잎들이 함박눈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E는 그 모습을 다소 홀린 듯 바라보다가, 기숙사 앞 벤치 근처를 지나갈 때, 다소 놀랐다. 벤치 위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커트 머리의 청년은 E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잘 지냈어?”

 

 “…귀하신 양반이 이런 누추한 곳에…”

 

 그 청년은 이번엔 푸하하, 하고 웃더니,

 

 “E, 너 전화번호 어떻게 돼?”

 

 하고 물었다. E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저장 안 했어?”

 

 “핸드폰이 없어.”

 

 “…왜?”

 

 “나중에.”

 

 청년은 품을 뒤적이더니 수첩과 펜을 꺼냈다. 수첩이라니. 이게 얼마만에 보는 물건이야. E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불러줬다. 청년은 받아적고, 또 뭔가를 적고는,

 

 “E, 이걸 기억해. 이건 황 선생님이 종종 하신 말씀인데…”

 

 “아, 황 교수님?”

 

 “어, ‘나쁜 나라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나쁜 일에 동원된다.’”

 

 “알았어. 그런데, 왜?”

 

 “일단 그렇게 알고 있어! 간다!”

 

 하고 청년은 생기발랄하게 돌아섰다. E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벚꽃잎들이 청년의 머리와 어깨 위에서 까불까불거렸다.

 

 젊은 사람들이 나쁜 일에… 이를 테면…

 씻나락 까먹는 일 같은…

 

 ...술 안 먹어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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