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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재 밴드' I -

 

 

 

- 0.

 

 '권리와 개인과 민주적 자유를 보호하는 기관들 외에,

불의와 거짓과 추함 속에 영혼을 파묻는 현대적 생활의 전반을 폭로하고

그것들을 제거할 목적을 가진 기관이 필요하다.'

 

- 시몬느 베이유 (Simone Weil, 1909~1943) -

 

 

 

- 1.

 

강 사장은 수심어린 눈으로 통유리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님이 없다. 물가는 오르고, 식자재 값도 오르고, 음식 값도 올렸다. 그리고 세월이 갈 수록 손님은 뜸해진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 창 밖, 한 손에는 우산을, 한 손에는 대파와 고등어가 들어있는 비닐 봉투를 들고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강 사장은 씁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강 사장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게임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강 사장은 반색하며 손님을 맞이했다. 그러나 손님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반가움은 사라지고 난처함이 떠올랐다. 이런. 하필 이럴 때. 강 사장은 머리를 긁적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식사... 되나요?"

 

손님은 강 사장 못지않게 울적한 말투로, 하지만 정중하게 물었다.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강 사장은, "그럼요. 앉으세요." 라고 대답하고는, "뭐 드실라요?" 하고 물었다. "김치찌개 주세요." 강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에 가서 물을 올렸다.

 

요리를 하면서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창 밖을 보니 왠지 행인들이 안 쪽을 흘깃흘깃 보는 것 같았다. 그건 너무 신경쓰이는 일이었다. 요리를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간이야 대충 맞았나? 강 사장은 다 만든 찌개를 손님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했다.

 

잠시 후, 강 사장은 문을 활짝 열었다. 에어컨 때문에 보송보송했던 실내 공기가 갑자기 습해졌다. 그리고 손님은 강 사장의 이 비언어적 행위에서 뭔가를 감지했다. 뭐, 환기 때문에 문을 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장님? 뭐하세요?"

 

그때, 파란 우비를 입고 양 손에는 식재료가 잔뜩 든 비닐봉투를 들고 젖어서 이마에 붙은 노란 머리를 비어 있는 손가락으로 힘겹게 떼어내며 강 사장에게 다가오는 여인이 있었다. 강 사장은 그녀를 보고 대답했다.

 

"아... 하하... 비가 오는 게 좋아서."

 

"사장님이 비를 좋아한다고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강 사장을 지나쳐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홀에 손님이 한 분... 세상의 모든 슬픔을 다 짊어지고 있는 것 같은 등이군. 그렇게 김치 찌개를 먹고 있는 손님을 지나쳐 주방으로 들어가, 재료들을 정리하고 있다가 손님의 얼굴을 흘깃 보았다.

 

저 사람은...

 

그녀의 머리는 이때 비상하게 돌아갔다. 아하, 그래서 사장님이 겁을 집어먹었고만. 어이구, 괜히 심통이 난 그녀는 아직도 '나는 비가 좋고 저 사람과 무관하다'를 등으로 외치고 있는 강 사장에게로 다가가 등을 두드렸다.

 

"사장님."

 

"어? 어, 왜?"

 

"그만 비 보시고 같이 감자나 깎아요."

 

"어, 그, 그럴까? 네가 일단 먼저 하고-"

 

강 사장은 말을 맺지 못했다. 그녀가 강 사장에게 얼굴을 가깝게 들이댔기 때문이다. 그녀는 귓속말로,

 

"사장님. 저 손님 때문에 그렇죠?"

 

"너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좀 치사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야, 임마, 원래 나이랑 겁은 같이 먹는 거야."

 

"됐어요. 어른들이 다 그렇지. 들어오세요."

 

결국 강 사장은 그녀에게 정신적으로 귀가 잡힌 모습으로 끌려들어왔다. 강 사장이 그렇게 주방으로 들어가 내키지 않는 손으로 감자를 깎는 동안, 그녀는 그 손님의 맞은 편에 가 섰다.

 

"손님."

 

"?"

 

"괜찮으시다면 저랑 얘기 좀?"

 

"...괜찮아요."

 

"뭐야. 승낙이야, 거절이야."

 

"아, 승낙..."

 

"감사."

 

그녀는 그러고는 손님의 맞은 편에 털썩 앉았다. 어차피 밥도 다 드셨겠다, 잠깐 이야기 좀 나눠 보자고요. 그녀는 그렇게 대담하게 생각하고는,

 

"손님. 우리 동네에서 꽤 유명하시던데요? 지역 신문에서도 난리고."

 

그러자 그는 지친 듯이 고개를 흔들며,

 

"아이구, 역시 그랬군요..."

 

"그러게 왜 노조를 도와줘요? 그것도 힘없는 노조들을. 그러니까 찍히지."

 

"저는 노조가 뭔지도 잘 모릅니다. 부르니까, 갔고, 연주했죠."

 

"이거 위험한 '아저씨'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똘망똘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나 아저씨 기타 치는 거 봤지. 아니, 솔직히 나 그런 거 처음 봤어요. 우리 밴드에도 곧 군대 가는 기타리스트 녀석이 있는데, 그 녀석과는 많이 달라..."

 

"뭐, 그런가요."

 

"네. 뭐랄까. 마치... 기타가 말을 하는 것 같은?"

 

"감사."

 

그는 새초롬하게, 아까 그녀의 말투를 따라하며 대답했다.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울적한 눈매와 달리, 행동이 쾌활하다. 재밌는 아저씨야.

 

"아저씨, 우리 밴드 들어올래요?"

 

"......

 

"보컬은 저고, 저는 랩을 해요. 그리고 베이시스트와 드러머가 있어요."

 

"구색은 다 맞춰져 있네..."

 

"구색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 밴드 실력 보면 놀랄 걸요?"

 

보통 자신감이 아닌 걸? 어쩔까? 그는 잠시 고민했지만, 길지는 않았다. 그는 입을 앙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계약 성립!"

 

"흐."

 

"저는 성양. 말했듯이 래퍼입니다."

 

"저는 L. 한야대학교 휴학 중. 그때까지 함께 하죠."

 

성양은 L에게 손을 내밀었고 L은 조심히 그 손을 잡았다. 가볍게 악수한 후, 성양은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었다. L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열어놓은 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L을 휘감았다.

 

창밖,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 2.

 

그 사람이 올 때가 되었다.

 

나는 베이스 기타를 품에 안은 채 삼각 김밥을 씹으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세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음악 듣는 것도 지겨워 매장의 음악을 껐다. 보통 혼자 밥을 먹을 때는 적적하기도 하여 유튜브를 틀어 놓고 밥을 먹지만, 나는 그게 조금 나쁜 버릇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찌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는 굳이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히죽히죽 웃으며 카운터에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이봐, 으, 히, 히, 아저씨."

 

"예에."

 

"나는 한 때 잘 나갔던 사람이야."

 

"그 얘기 했어요."

 

"으히히히! 그래? 이봐, 아저씨, 근데 여기서 뭐해?"

 

"...일 해요."

 

"아니, 아니, 그거 말고. 그건 나도 알아! ...왜 그런 기다란 기타를 잡고 있냐고."

 

"아, 연습 하려고..."

 

"그래? 으히히히! 예술가네? 내가 한 마디 할게. 항상 '마음' 공부를 잘 하라고."

 

맥락이 불안한 대화를 이어가지만, 나는 사실 그가 이 곳에 온 진짜 목적을 알고 있다.

 

"폐기 드려요?"

 

"오! 있어?"

 

놀라는 척하긴. 매일 새벽마다 찾아오면서. 나는 아까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비닐 봉지에 담아 놓은 식품들을 그에게 내밀었다. 삼각 김밥이 여덟 개, 250ml 우유가 두 개, 샌드위치가 두 개, 핫바가 한 개니까 꽤 많은 양이다. 삼각 김밥을 두 개 정도 먹으면 그럭저럭 끼니는 때우니까 이 정도면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고, 고마워, 아저씨."

 

"별 말씀을."

 

별로 칭찬 들을 만한 일도 아니다. 사장님은 나에게 폐기 식품들을 다 까서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리라고 지시했지만, 그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이 분에게 드리는 게 일이 더 수월하다. 사실 나도 그가 오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지경이었다.

 

"아저씨, 내가 한 마디 더 할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십시오."

 

그러자 그는 얼굴을 나에게 가까이 내밀더니, 낮고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이상하게 만들어.'"

 

나는 처음에 그를 보았을 때 그가 자꾸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고 상체도 구부정하게 하고 느릿느릿 걷고 갑자기 발작하듯 소리를 질러서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떤 영화의 캐릭터를 흉내 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책은 너무 안 읽고 영화는 너무 많이 본다. 어쨌든 그의 저 말은 어느 정도의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가난의 고통' 때문에, 조금 이상해진 게 맞는 것 같다.

 

그는 말을 마치고는 휙 돌더니 나에게 손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는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나는 그의 등을 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도 약간 이상하지. 매일 봐서 정이 들었나.

 

요즘 드는 의문은, '성서'는 왜 가난한 자들에게 잘 해주라고 했을까, 이다. 사실 그다지 착하지도 않고 예쁜 짓을 하지도 않고 자존심도 센 그들을 말이다.

 

나는 물을 조금 마시고, 다시 베이스 기타를 뚱땅거렸다. 길고 외로운 밤. 기타가 있고 책이 있어 그나마 버틴다.

 

한 삼십 분 연습했을까, 나는 눈이 조금 아파와서 기타를 내려놓고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밤 공기가 선선하다. 이제 두어 시간 후면 어스름하게 동이 틀 것이다. 아침과 함께 나는 잠이 든다. 잠들기 전에 누군가가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문자가 왔다.

 

[새로운 메시지 - 성양

임군, 지금 일 중이지?

오늘은 진상 손님 없었어?]

 

나는 반색하며 답장을 했다.

 

[발신 - 성양에게

오늘은 없음 ㅋ

매일 찾아오는 이상한 아저씨는 한 분 있지만 ㅎ]

 

[성양 : 아, 폐기 찾아오시는 아저씨?]

 

[임군 : 맞아.]

 

[성양 : 그 아저씨 저번에 봤을 때 자기가 어디 대기업에서 일했다고 했는ㄷㅔ]

 

[임군 : 아, 그래? 언제 봤대]

 

[성양 : 저번에 거기 놀러갔을 때 나에게 갑자기 그 얘기를 하더라고]

 

[임군 : 흠]

 

[성양 : 오늘은 진상 없었다니 다행이네]

 

[임군 : 사실 사람들은 거의 다 착해. 한 두 명의 진상이 있는 거지 ㅋㅋ]

 

나는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임군 : 그런데 진상 손님하고 싸우다 다치면 산재 처리 되나?]

 

[성양 : 될 걸?]

 

그때였다. 어느 골목길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 편의점으로 돌진하다시피 들어왔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그를 따라 들어갔다. 그는 냉장고로 급하게 다가가더니 곧 휙 돌아 와인 진열대 앞에 섰다. 그는 와인들을 바라보다가 큰 소리로 물었다.

 

"야! 여기 와인들이 왜 이렇게 비싸?"

 

"......"

 

올 것이 왔다. 그는 와인 한 병을 가지고 와서 카운터에 내려놓고,

 

"얼마냐?"

 

아, 참자, 참자. 나는 대답했다.

 

"이만 천 오백원이요."

 

그는 내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카운터 위에 있는 1회용 전자 담배를 하나 집어 들고는, 그 비닐 포장을 벗기려 하다가, 나에게 내밀었다.

 

"야. 이거 까 봐."

 

"......"

 

"뭐해? 안 까고."

 

이봐, 임군... 참는 거야. 이제 참는 법도 좀 배워야지. 여기서 짤리면 이제 어디서 일하려고? 생활비가 떨어지면 기타를 파는 수가 있어. 참는 거야. 그래, 그래, 착하지, 우리 임군. 잘 참-

 

나는 대답했다.

 

"네가 까. 이 씹새야."

 

 

 

- 3.

 

조양은 단체 채팅방을 보며 심란한 상념에 잠겼다. 지역 신문의 인턴 기자로 일한 지 약 삼 개월 째, 그녀의 동료들은 한 인물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조양이 최근 성양의 소개로 알게 된 인물이었다.

 

 단체 채팅방 - 안주 신문 문화부

 

- 예전에 L이 초딩들 가르치는 일을 했다는데

그때 제가 거기 센터장한테 L에게 성범죄 경력 조회서 받아오라고 시켰습니다

 

- 말 좀 똑바로 해. 초딩들이 뭐야.

 

- 그런데?

 

- 예/

 

- 깨끗하죠 ㅠ

 

- 아, 왜 깨끗하지? 그런 사람이

 

- 주위에 조사해 봐.

 

- 찾아보겠습니다.

 

- 일단 소문 내. 아무거나. 헛소문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 ......

 

- 최양 선배님, 한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 뭔데?

 

- 진심으로, 성범죄가

 

- '있었길' 바라셔요?

 

- 뭐?

 

- 야 무슨 소리야 '인턴'이

 

- 야

 

- 죄송합니다.

 

조양은 자신의 말을 후회했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했는데 결국 뱉어 버렸다. 그녀는 핸드폰의 화면을 잠근 다음,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돛을 올린다.'

 

인턴만으로는 생활비가 턱도 부족하다. 자전거 배달 해봐야 약간의 보탬이 될 뿐이다. 일을 마치고 나면 삭신이 아프다. 어머니는 이게 '막노동'이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다. 제일 무서운 건 오토바이, 빠르게 휙휙 지나가는 오토바이가 제일 무섭다. 그 다음 무서운 건 차, 특히 인도 중간에서 후진하는 차. 내가 지나갈 때 과연 운전자가 나를 보고 있을지 아닐지 알 수가 없다. 후진할 때 비상등이라도 켜 줬으면.

 

다만 나는 이런 말을 함부로 하진 못한다. 어쨌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있고, 오토바이나 차 만큼은 아니지만 자전거도 행인들에겐 위협적일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방어 운전을 하는 것 뿐이다. 자전거 도로가 잘 안 되어 있으니 그 정도밖에 할 수 없다.

 

매장에 들러 음식을 픽업했다. 그리고 배달 목적지로 향했다.

안주로44길 31-9...

 

꽤 골목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야 나오는 집이었다. 이 일을 하면 세상에 별의별 집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층 2호... 문을 두드린다.

 

"배달 왔습니다."

 

대답이 없다. 조양은 한 번 더 문을 두드렸다.

 

"배달 왔습니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그리고 조양은 당황하지 않으려 애썼다.

 

눈을 비비며 나온 남성은 속옷만 입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야 종종 있는 일이다. 조양은 배달 음식을 그에게 건네었다. 그가 음식을 받아 들며 말했다.

 

"여자네?"

 

"네?"

 

"여자가 이런 일도 해?"

 

"네, 네. 뭐.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조양은 그의 다음 말에도 당황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나 혼자 먹기엔 좀 많은데. 같이 먹을래?"

 

"맛있게 드세요. 이만."

 

조양은 끝까지 당황하지 않으려 애쓰며 몸을 돌렸다. 대문을 나서고, 자전거에 타고 골목길을 빠져나와 그제야 알 수 없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배달 일하다가 무슨 일 당하면 산재 처리 되나? 오늘 편하게 일하려고 입은 레깅스가 화근인가? 아까 남자의 시선 방향 변화를 잠시 복기하던 그녀는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페미니즘 사상이 예전보다는 많이 발전해서, 여성이 성범죄를 당했을 경우 여성이 야한 옷을 입은 게 원인이라는 인식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남자'와 '여자', 둘 사이의 간극은 화성과 목성 사이의 거리 정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공생할 수 밖에 없는 운명

서로 없이 어떻게 사나?

어쨌든 저 집은 이제 가지 말아야겠다

'극소수의 일부' 남자들이 성범죄를 모의하고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잖아

마치 기자들이 서로 음험한 말을 주고받듯이...

 

어?

 

조양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살펴보니 채팅방은 아까 나의 말로 인해 '갑분싸'가 된 것 같았다. 에구, 나 문제아로 찍히겠다. 조양은 혀를 끌끌 찼다. 여기서 짤리면 어디로 가지. 조양이 씁쓸해 하며 세 해 전에 끊은 담배를 떠올리고 있을 때, 새로운 메시지가 왔다.

 

단체 채팅방 - 안주 신문 문화부

 

- 잠깐 좀 생각해봤는데

내가 잠깐 뭔가에 씌웠웟던 것 같다

 

어어, 의외...

 

- 아닙니다. 별 말씀을요.

그리고 이제 뉴스중재처리법 시행되면 조심해야죠.

시행 안 되는 게 제일 좋겠지만...

 

약간의 침묵 후, 답장이 왔다.

 

- 그래. 우리 조 인턴기자. 생각이 깊네

드럼 연습 열심히 하고.

 

- 감사합니다.

 

맞다. 나 드러머지. 조양은 핸드폰을 집어넣고 페달을 밟았다.

 

베이스 드럼을 밟듯, 리듬감 있게 페달을 밟는다

해가 뜨고 달이 지는 리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그 속에서 자신만의 주체적인 리듬...

 

생각의 편린 속에서, 조양의 자전거는 조심스러우면서도 힘차게 나아갔다.

 

 

 

- 4.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뭐, 처음은 아니었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을 미행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그의 걸음걸이를 보라. 아닌 척 해도, 당신의 걸음과 보조를 맞추기 위한 그 부자연스러움이 드러난다. 그의 목적지는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걸음의 속도에 변화를 줘 봐라.

 

저 녀석은 끄나풀에 불과할 것이다. 몸통을 잡아야지.

 

나는 마치 담배를 피우기 위해 그러는 것처럼 호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피 물고, 옆골목 사잇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잠시 낭패의 감정을 느꼈다. 골목길에는 이른바 '촉법소년'으로 보이는 몇몇 꼬마들이 벌써 한 개피씩 물고 있었다.

 

"씨발. 그 형이다."

 

한 녀석이 다른 녀석들에게 중얼거렸다. 다른 녀석들은 모두 낭패라는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몇 주 전부터 집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녀석들이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만 까딱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간명한 또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전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의 사사로운 것들을, 이 녀석들은 이미 알고 있다.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아마 거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뒤를 돌아보아 나를 뒤따라오던 그가 지나치게 놔둔 다음, 녀석들 근처에서 담배를 피웠다. 우리는 다같이 말이 없었다. 그저 녀석들은 강박적으로 침을 뱉었을 뿐이다. 어른들 조심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고, 담배를 끄고, 몸을 돌렸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마 한 녀석이 내 등 뒤에서 나를 위협하는 투의 장난을 친 모양이다.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임군이 준 카라멜을 꺼내, 입에 집어넣었다.

 

저 멀리, 그 녀석이 보인다. 이미 세상 속에서 푹 삭아버린 그 분위기가 그를 늙어보이게 만든다. 나는 그의 등을 툭툭 쳤다.

 

"이봐."

 

그가 뒤를 돌아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젠장."

 

"여기서 같은 학교 출신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고, 얼굴에 쓴 마스크를 내리며,

 

"어딜 가나 사고뭉치잖아? 이젠 취직 준비도 하고 결혼도 가고 해야 하지 않겠어?"

 

"피차일반이지. 너도 취직 안 되니까 돈 받고 이런 일이나 하는 거 아냐?"

 

"빌어먹을."

 

"왜 편의점 알바하고 시비가 붙어서 경찰을 부르게 만들어?"

 

"...빌어먹을. 그 알바 새끼가 그렇게 싸가지가 없을 줄은..."

 

"푸하하."

 

나는 웃었다. 녀석은 그런 나를 보고 눈썹을 더욱 더 찡그리더니, 갑자기 외쳤다.

 

"와인에, 스테이크, 시발, 세상의 모든 맛난 음식!"

 

"...뭔 소리야?"

 

"저번에 배달 온 여자 반반하던데..."

 

정신이 나갔군. 나는 녀석을 따라 눈썹을 찡그렸다. 녀석은 말을 이어갔다.

 

"한 번 태어난 인생. 떵떵거리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

 

"취미 생활을 가져 봐. 헛된 욕망은 버리고."

 

"시발! 돈이 있어야 연예인급 여자들하고 할 수 있다고!"

 

녀석은 갑자기 외쳤다. 나는 그 기세에 놀랐다. 하지만 곧 침착하게 되물었다.

 

"너 페미니스트 아니었어?"

 

 

"......"

 

'상황적 페미니스트'였군. 나는 다시 물었다.

 

"누구야?"

 

"뭐가?"

 

"너에게 미행을 사주한 놈 말야."

 

"말할 것 같냐?"

 

"뭐. 말하지 않아도 알아."

 

"시발새끼..."

 

몸통을 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물증이 없다면 정황 증거라도 잡아야 하는데. 나는 손인사하고 돌아섰다. 그때 녀석이 다급하게 말했다.

 

"이봐. L. 재밌는 거 알려줄게."

 

"?"

 

"내년에 우리 학교에서, 즐거운 거 하나를 기획한다."

 

"뭔데."

 

"'마피아 게임.'"

 

"?"

 

"참가해. 나도 '사회자'로 참가하겠다."

 

"내가 왜?"

 

"이건 말야."

 

하고, 녀석은 나에게 바짝 가까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쉭쉭거렸다.

 

"자존심 문제야.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자존심. 너는 내 자존심을 망가뜨렸어. 시발새끼야, 알아? 나는 너를 미행했는데 마치 내가 미행당한 느낌이야. 너는 인간이냐, 괴물이냐? 도깨비냐? '위기감'이란 게 없냐?"

 

정신이 계속 나가고 있군. 나는 숨을 훅 들이마시고,

 

"내가 참가해서, 얻는 건 뭐지?"

 

내 질문에 녀석은 싱긋 웃었다.

 

"네가 이기면, 가르쳐 주지. '배후'를."

 

어?

몸통을?

 

나는 입을 일자로 다물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너는 '사회자'라며. 사회자를 이긴다는 게 무슨 말이지?"

 

"참가하면, 알게 된다."

 

"......"

 

"참가해."

 

녀석은 거의 명령조로 말하고는, 알 듯 모를 듯 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다소 슬퍼보이기도 했다. 녀석은 나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돌아섰다. 나는 녀석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녀석의 발걸음에 지금, 약간의 해방감이 찾아왔다. 저 걸음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돈인가, 자존심인가.

......

 

나는 내 걸음의 목적지- 노동자들이 곧잘 질병에 걸린다는 어느 공장의 집회 현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다.

 



--

마피아 게임 단편선

'산재 밴드' I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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