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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

 가끔씩 지훈 형과 나는 동네의 벤치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곤 했다. 형은 술을 좋아하지만 위장이 약해서 많이는 못 마신다고 한다. 나는 캔맥주를, 형은 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들고, 군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만날 때마다 오백 원씩 달라고 하는 아저씨의 흉을 보기도 하고, 방음이 안 되는 저 고시원 짜증난다, 지금이라도 환불해달라고 하고 나갈까, 등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형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가끔 가볍게 맞장구를 치기도 하면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 모습도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정말로... 경청(傾聽)하고 있는 게 느껴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속깊은 이야기를 했다.

 "가끔은... 꼼짝 못할 정도로, 울적할 때가 있어요."

 형의 눈이 반짝였다.

 "어떻게요?"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눈을 반짝였다.

 "그러니까, 그냥 가만히 방에 누워 있는데, 그 상태로 그냥 꼼짝을 못하겠는 거에요.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식은땀이 괜히 손바닥에서 줄줄 나고, 밥도 먹기 귀찮고... 그냥... 마구 마구 울적해요."

 "......"

 "아무 것도 못 하겠어요. 왜 그럴까요?"

 형은 곰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진득하니 형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나온 형의 대답은, 깊은 고민과 다르게 약간 장난스러웠다.

 "마치 이등병 같은?"

 나는 갸우뚱했다가, 아, 하고 이마를 쳤다. 형이 말을 이어갔다.

 "신병 때, 기상 시간 오 분 전에 눈 떠서, 바짝 긴장하고 있는 그런 모습 있잖아요."

 "으, 하하하."

 "사실, 살면서 그런 경험 언제 해 보겠어요. 군대에서나 하겠지."

 "맞아요, 맞아요. 하하."

 "흐. 쓸데없는 경험이죠."

 "......"

 작가라 그런가? 이 형과의 대화에는 이런 식으로 반전이 있을 때가 많았다. 다소... '시니컬' 했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왠지 기분을 좋게 하는 반전이었다. 나는 신나서 말을 이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곳에서 살았나 싶네요. 내무실에서 그렇게 다닥다닥 붙어서 잠을 자고. 물론 피곤하니깐 정신 없이 곤히 자긴 했지만."

 "하하."

 "한 번은 자다가 머리 쪽에 뭔가 부딪히는 느낌이 나서 깼는데, 고참이 저에게 베개를 집어던졌더라고요. 코 곤다고."

 "음. 저도 그런 적 있어요."

 "...형이 베개를 던졌어요?"

 "...아니. 맞은 쪽이죠."

 "아. 그렇구나. 형은 착한 고참이었을 것 같아요."

 "이등병 때는 고문관 소리도 들었어요. 보시다시피, 행동이 느려서."

 "저는 싹싹하긴 했는데..."

 "그런 동기들이 부러웠죠."

 나는 잠깐 움찔했다.

 "형은 전역하기 전에, 공부 같은 거 했어요? 토익 공부 같은 거."

 "아뇨."

 "그럼 뭐 하셨어요?"

 "음, 뭐했더라?"

 형은 잠시 또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가,

 "맨날 기타만 치고, 책만 읽었던 것... 책만 읽었네요."

 "아. 무슨 책이요?"

 "음?"

 "앗. 죄송해요. 꼬치꼬치 캐물어서..."

 "괜찮아요. 흐. 그냥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어요."

 "......"

 "심심하니까..."

 "그때부터 작가의 꿈을?"

 "...응? 그건 아닌데."

 아니구나. 그런데 왜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을까? 사람은 왜 책을 읽을까?

 나는 왜 판타지 소설을 그렇게 뒤적거렸을까?

 우리는 잠시 말없이 각자의 음료를 홀짝였다. 나는 이런저런 고민을 해 보았다. 앞으로 나는 뭘 할까, 에 대한 고민이었다. 약간 근질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괜히 손가락을 툭툭 꺾어가며, 지훈 형처럼 눈에서 레이저를 뿜어내려 애쓰며, 생각에 잠겼다.

 "...타는 냄새가 나는데?"

 지훈 형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정말,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났다. 곧이어 매캐한 연기가 어디선가 우리를 덮어왔다. 형은 벌떡 일어나서 연기 나는 쪽으로 향했고 나도 형을 따라갔다.

 잠시 후, 우리는 비명을 질렀다.

 우리가 머무는 고시원에서 연기가 치솟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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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밤은 계속된다

7화

2019.03.17.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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