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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아주세요 -

 

 


 친구여, 오늘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소.

 내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알 거요. 그리고 약간의 빚도 갚아야 하오. 이런 경제적 부담 때문에 나는 매일 매일을 치열하게 살고 있소.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건강하오.

 공부하랴, 배달 알바 뛰랴, 집에서 밥 하랴, 청소하고 빨래하랴, 머릿속에 있는 이 많은 투 두 리스트 때문에 나는 그 좋아하는 산책도 못하고 하루를 바쁘게 흘려 보내오. 정신없는 삶이오. 이럴 때일수록 내면의 중심을 놓치면 안 되는데, 가끔은 그게 뭐였나 싶을 정도요. 

 배달 콜이 들어와서 킥보드를 들쳐메고 집에서 나가던 참이었소. 옆 집 꼬마 아이가 대문 밖에서 혼자 놀고 있었소. 꼬마 아이와 내가 눈이 마주쳤소. 꼬마 아이가 말했소.

 “어? 우리 할머니 도와준 아저씨다!”

 그렇소. 저번에 한 번, 옆 집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시길래 도와드린 일이 있었소. 이 꼬마 아이는 그 할머니의 손녀딸인가 보오. 나는 빙그레 웃었소. 꼬마 아이가 다시 말했소.

 “아저씨, 어디 가요?”

 “어? 일하러 가.”

 “놀아주면 안 돼요?”

 놀아달라고? 나는 움찔했소. 그러고 보니 나는 아이들하고 놀아 본 경험이 없었소. 세상에나, 삼십 육 년을 살면서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다니. 충격적인 깨달음이었소.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소. 

“안 돼. 아저씨 일 안 하면 돈 못 벌어.”

 “……”

 꼬마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소.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고 아주 맑았소. 꼬마 아이는 나를 보며 뭔가 생각에 잠긴 듯 했소. 나는 내 설득이 통했나 보다, 생각했소. 역시, 애들은 순진하구나. 나는 속으로 웃었소. 

 착각이었소. 

 “놀아주세요...”

 아이가 떼를 쓰기 시작했소. 으아, 귀찮은 일에 말려들었군... 나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 하러 가야 돼는데...”

 “일 하러 안 가면 전화 와요?”

 전화? 아, 출근 독촉 전화 뭐 그런 거 얘기하는 모양이오. 사실, 내가 하는 배달 대행 알바는 하고 싶을 때 원하는 만큼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일 하러 안 간다고 무슨 전화가 오는 건 아니오. 하지만 나는 그냥 둘러대기로 했소. 

 “응. 전화 와.”

 오, 나의 이 능청스러운 거짓말. 아이는 다시 생각에 잠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소. 이번에는 통했겠지.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었소.

 착각이었소.

 “놀아주세요...”

 “……”

 “제발! 제바알!”

 “……”

 어쩌지? 나는 머리를 긁적였소. 그리고 아이의 다음 말을 듣고는 충격으로 머리털을 뽑을 뻔 했소.

 “땡땡이 치고 놀아주세요!”

 땡... 땡이...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말이오... 세상에가 가장 감미롭고 가장 짜릿한 그 말... 하지만 무책임하다는 사회적 비난이 두려워 내면 깊숙이 숨겨두고 봉인했던 그 말...  

 하지만 인간사... 땡땡이가 필요할 순간이 있을 거요...

 친구여,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소? 나는 배달 콜을 취소했소. 아이는 내 손을 잡아 공터로 이끌었소. 공터에는 다른 아이들이 많이 있었소. 아이들이 나에게 달려들어 “놀아주세요, 아저씨!” 하고 이구동성으로 외쳤소. 솔직히, 약간, 아주 약간, 귀찮기도 했지만... 허허, 하지만, 어쩌다 보니 같이 놀게 됐소. 

 친구여, 아이들은 정말 창의적으로 잘 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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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아주세요

 201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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