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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서(禁書)를 훔쳐보는 재미 -

 

 

 

 틸트는 숲 속을 달렸다. 그는 다급해 보였지만, 동시에 환희와 희열이 얼굴에 묻어났다. 땀이 그의 이마 위로 한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나무 뿌리에 걸려, 틸트는 넘어졌다. 우왓, 하는 비명을 내지르며, 틸트는 보기좋게 우당탕탕 넘어졌다. 그때 틸트의 품 속에 있던 책이 데구르르 굴러나왔다. 틸트는 세상 밖으로 나온 책을 황급히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주위를 황급히 살폈다. 

 책을 품 속에 다시 집어넣고, 다시, 틸트는 달렸다. 

 틸트는 곧 숲을 빠져나왔다. 부서진 차량들이 나뒹구는 사차선 도로를 달리며, 틸트는 자신이 꿈 속을 달린다고 생각했다. 제 4차 세계대전이 있기 전에 이 곳은 ’한국’이란 나라의 수도였다. 지금은 세계 정부의 ‘반도 전략 집행부’가 있는 곳이다. 이 곳의 부서진 차량들은, 세계 정부가 인민들로부터 압수하여 내버린 차량들이었다. 

 틸트는 곧, 도로를 빠져나왔다. 

 “잠깐 멈추십시오.”

 낭패였다. 틸트는 이를 악물었다. 감시 로봇은 눈을 빛내며 틸트를 바라보았다. 틸트는 어쩔 수 없이 감시 로봇을 마주 바라보았다. 

 “동공 인식. 신원 확인. ‘틸트 엣지’, 2084년생.”

 “맞습니다.”

 “2등급. 선진 시민.”

 등급은 고기에게나 메기는 거야. 틸트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감시 로봇을 향해 방긋방긋 웃었다. 감시 로봇은 고개를 끄덕였다. “ 가도 좋습니다.” 틸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감시 로봇을 지나쳤다. 품 속에 있는 책이 자꾸만 덜거덕거리는 것 같았다. 틸트는 손에 묻은 땀을 몰래 바지에 닦았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틸트는 두려움에 턱을 덜그럭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감시 로봇에게서 ‘여덟 개의 촉수’가 뻗어 나와, 틸트를 향해 눈을 빛내고 있었다. 틸트는 쭈뼛쭈뼛 웃으며,

 “하하...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하고 말했다. 감시 로봇은 대답하지 않고, 그 특유의 삼엄한 눈빛을 빛내다가,

 “금속 물체. 없음.”

 하고 중얼거렸다. ‘여덟 개의 촉수’는 순식간에 감시 로봇의 몸체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틸트는 꾸벅 인사하고는 - 그럼 수고하십시오 -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집에 도착한 틸트는, 집 문을 잠그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살았다. 하필이면 끌려가서 ’기계 숙주’가 될 뻔했어. 요즘 조선해방전선(CLF : Chosun Liberation Frontline) 이 곳곳에서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어, 감시가 유독 삼엄해졌다. 조선해방전선은, 나라 이름을 잃고 그저 ‘반도’로 불리고 있는 이 땅에서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되찾는 것을 기치로 내세운 조직이었다. 이 ‘반도’에 세워진 최초의 나라가 ‘조선’이었다고 한다. 이후, 한 차례의 ‘조선’이 더 있었다. 틸트는 품 속에서 책을 꺼냈다. 

 이 책이, 바로 그, ‘후 조선’ 시기에 발간되었던 책이다. 

 틸트는 조심스럽게, 책의 표지를 바라보았다. 저자 이름이, Huh-Kyun 이라고 적혀 있었다.

 [Hong Kil Dong Story] 

 1급 금서다. 틸트는 조심스럽게 책의 첫 장을 넘기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보니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못 먹었다. 하지만 틸트는 배고픔도 잊은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금서를 훔쳐보는 재미. 어릴 적, 성인 잡지를 훔쳐보는 재미보다 수만 배는 더 재밌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책을 읽은 틸트는, 곧 감미로운 느낌에 젖어들었다. 틸트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집 안 곳곳을 서성였다. 걸을 때마다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틸트는, 곧 자신의 감상을 행동으로 옮길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틸트는 비밀 회선으로, 친구인 제이스에게 메시지를 보낸 다음, 그제서야 침대에 쓰러졌다. 

 한 시간이나 잤을까. 틸트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누구지? 틸트는 갈리진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야?”

 “나야.”

 제이스의 목소리였다. 틸트는 일단 ‘금서’를 품 속에 넣고, 문을 열었다. 밖은 어느새 비가 오고 있었다. 제이스는 빗속을 뛰어왔는지 온 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틸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왠 일이야?”

 “왠 일이긴. ‘물건’을 가지고 있다며? 그걸 보러 왔지.”

 “들어와.”

 틸트는 제이스를 들여보내고 밖을 잠시 확인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틸트는 문을 조심스레 닫고, 잠궜다. 안으로 들어온 제이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물건’은 어디있지?”

 “급하긴. 차 마실래?”

 틸트는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제이스는 머리에 묻은 물기를 대충 털며 쇼파에 주저앉고는,

 “너하고 벌써 몇 년째지?”

 하고 물었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했지만 틸트는 곰곰 생각하다가,

 “한 오륙년 된 것 같다. 저번에 내가 발표한 논문 읽어봤어?”

 “고전 음악의 변천사에 관한 내용이었지? 덥스텝의 역사.”

 “맞아.”

 틸트는 제이스에게 차를 건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스는 차를 후룩 마시고는, 

 “어떻게 구했나?”

 하고 물었다. 틸트는, 제이스의 눈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푸른 눈이 하염없이 빛나고 있었다. 틸트는 곧 대답했다. 

 “배를 타고 ‘열도’에 갔지. 네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야.”

 “용케 배 티켓을 구했군.”

 “레인 아저씨의 도움이 있었어. ‘열도’ 의 남쪽 섬 중 하나에 도착한 나는, 야자수 밀림의 어느 가정집에 찾아갔어. 그리고 그 곳에서 이 책을 구할 수 있었어.”

 틸트는 품 속에서, 조심스럽게 책을 꺼냈다. 제이스의 눈이 반짝였다.

 “이거군. 100대 금서 중 하나가.”

 “맞아.”

 제이스는 조심스럽게 책을 받아들고는, 유의 깊은 눈으로 책을 관찰했다. 틸트는 속으로 웃었다. 아까 내 모습이 저랬을까? 제이스는 책의 첫 장을 넘기더니, 곧 후루룩 넘겼다. 그리고는 곧, 제이스는 책을 탁, 소리 나게 덮었다.

 “난 못 읽겠어. 무서워서.”

 “이해해.”

 틸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스는 차를 후룩 다 마셔버리고는,

 “좋은 구경 했다. 나는 이제 가야겠어.”

 “벌써?”

 틸트가 놀라서 물었지만 제이스는 몸을 일으켰다. 피곤할 거 아냐. 여독을 좀 풀고 있어. 갈게. 제이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열었다. 

 비가 세차게 오고 있었다. 

 제이스는 밖으로 나가다가, 틸트에게 물었다.

 “우리가 몇 년째지?”

 “...한 오륙년 됐지. 왜 그걸 자꾸 물어?”

 “아. 그렇군.”

 제이스는 그렇게 말을 얼버무리고는, 갈게, 하고 들릴 듯 말 듯 인사하고는, 곧 빗속으로 걸어나갔다. 틸트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곧, 틸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보를 받고 여덟 기의 전략 기동대 로봇이 틸트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틸트는 로봇들을 보며 생각했다. 틸트는 잠시 망연자실하며 욕을 내뱉었다- 제이스, 이 개쌔끼! - 하지만 틸트는 곧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틸트는 황급히 집으로 들어가, ‘금서’를 잘 포장했다. 그리고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 곳에는 지하로 연결된 ‘보관함’이 있었다. 틸트는 ‘보관함’에 책을 밀어넣었다. 책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지하 깊숙히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틸트는 침대 밑에서 나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틸트는 문을 열었다. 전략 기동대 로봇이 틸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곳에 금서가 있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잠시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확인해 보십시오.”

 “예. 그리고 당신은 저희와 잠시 동행하셔야겠습니다.”

 틸트는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로봇은 틸트의 손에 족쇄를 채웠다. 틸트는 순순히 로봇들을 따라 이동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될까. 틸트는 문득 두려웠다.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천둥이 치고 있었다. 틸트는 족쇄가 채워진 손을 비비며, 이게 금서를 훔쳐보는 재미에 대한 대가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자, 아까의 감미로움이 생생히 기억났다. 

 틸트는,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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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禁書)를 훔쳐보는 재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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