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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

 

 

 

 해와 달이 여러 번 뜨고 졌다.

 

 나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기 위해 녀석은 몇 번이나 더 왔다갔다했다. 그리고 녀석은 먹을 것만 가져다주진 않았다. 이곳 밖에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소식들도 가져와서 알려준 것이다. 내가 이 곳에 갇혀 있다는 소식은 쥐 무리의 우두머리에게도 전해졌다. 그리고 그는 잠시 녀석을 내 곁에 붙여놓기로 결정했다고. 아마 이런저런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녀석과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그건 꽤 재밌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폭소했다. 그러다가 둘 다 할 말이 없어지면, 우리는 고개를 쳐든 채 별빛을 바라보곤 했다.

 

 어느새 우리는 '친구' 비슷한 게 되어 있었다. 그런 걸 믿는다면 말이다.

 

 "나가고 싶어요?"

 

 또 한 번의 달이 뜬 밤에, 내 등에 기댄 녀석이 물었다. 나는 녀석을 흘깃 바라봤다가, 다시 별빛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글쎄... 이제는 잘 모르겠네."

 

 "......"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여기 계속 있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네가 좀 고생하겠지만."

 

 그러자 녀석은 내 등에서 떨어지고는, 몸을 빙글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고생 안 할 거예요."

 

 "엉?"

 

 "제가 계속 돌봐줄 줄 알았어요?"

 

 나는 피식 웃으며,

 

 "그냥 말이 그렇다는 얘기야."

 

 나도 일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나가야지."

 

 하고 몸을 쭉, 늘리며 기지개를 폈다. 그런 나를 보며 녀석이 물었다.

 

 "다시 도약하게요?"

 

 "아니."

 

 나는 일단 짧게 대답한 다음,

 

 "다른 방법을 쓸 거야."

 

 "어떤-"

 

 나는 앞발을 들며 녀석의 말을 제지했다. 녀석은 얼떨결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한 편으로는 눈동자를 조금씩 움직이다가,

 

 "푸하하하!"

 

 하고 크게 폭소했다. 그러자 녀석이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드디어 이 고양이가 미쳤나,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표정이 너무 웃겨서 더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

 

 "?"

 

 그리고, 소리. 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이 곳으로 오는 발자국 소리. 나는 귀를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고, 그런 내 모습을 본 녀석은 상황을 이해한 눈치였다. 소리.

 

 해와 달이 몇 번 뜨고 지는 동안, 멀리서 희미하게 들렸던, 발자국의 소리. 지금 그 소리가 이 곳으로 오고 있었다.

 

 "고양이는 아니네요."

 

 "응. 사람이야."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녀석은 후다닥 어디론가 숨었다. 나는 별빛이 내 몸을 어슴푸레하게 비추는 근처에 섰다. 사람이 이 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발견할 것이다. 어떤 사람일까.

 

 나를 구해줄까.

 

 "Kij L Hupie."

 

 드디어, 저 위에서, 길다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낭패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그 사람' 이었다.

 

 하필이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달빛이 그 사람의 그 길고 삐쩍 마른 몸을 비추었다. 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에는 아무 감정도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았다. 거기에 깡말라서 움푹 패인 볼과- 두드러지게 드러난 광대뼈는 달빛을 받아 더욱 기괴했다. 내 몸은 잔뜩 굳어져가고 있었다. 나는 인간들이 원거리에 있는 대상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좁은 곳에서 그걸 피하려면...

 

 그가 사라졌다.

 

 사라졌다...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갔네요?"

 

 "응."

 

 어느새 다시 나타난 녀석이 물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곧 복잡다단한 감정이 일었다. 위험은 피했지만, 희망도 사라졌다. 또 다른 사람이 '우연히' 이 곳을 지나가길 바랄 수 밖에 없다. 나는 갑자기 몸에 힘이 쭉 풀리는 것을 느끼며,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일어나야 했다. 소리가 다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질질 끄는 소리와 함께. 나와 녀석은 다시 긴장하여 위를 주시했다. 다시 달빛 속에서 나타난 사람은 방금 그 사람이었다. 왜 다시 왔지? 나는 궁금했지만, 이내 궁금증이 풀렸다.

 

 잠시 후, 철커덕철커덕하는 소리와 함께, 그 사람의 몸처럼 아주 길고 깡마른 물체가 이 아래쪽까지 놓여졌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나를 보며 손짓했다.

 

 올라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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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꿈꾸는 유랑극단

3막 12화

201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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