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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피아 게임 II - Dare To Live - 

 

 

 

 

- 0.

 

 "애쓰지 마라 (Don't Try)"

 

 - 찰스 부코스키 (Charles Bukowski) 의 묘비명 -

 

"가장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어버렸고

 가장 악한 자들은 열정적인 강렬함으로 가득 차 있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W. B. Yeats) 의 <The Second Coming> -

 

- 1.

 

생각을 정리하고 나아간다.

 

한 해만의 복학인가, 셔틀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노숙한 그는 자신의 옷에 붙은 먼지들을 털어내었다. 여름 밤의 모기들이 군데군데 그의 팔을 깨물어 놓았지만, 그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거운 이펙터 가방과 기타는 잠시 내버려두고,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근처의 빌딩에 들어가 화장실에서 머리를 대충 감았다.

 

젖은 머리를 하고 정류장에 앉아 있자니, 새 학기를 맞이하여 학생들이 말끔한 옷을 입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 뭐야."

 

B가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B를 보고 빙긋 웃었다.

 

"왜 복학했지?"

 

B는 반가운 마음과는 다르게 약간 눈을 흘기며 물었다. 그는 무심코 담배를 물었다가, 이 곳이 금연구역이란 걸 깨닫고는 다시 담배를 집어넣으며,

 

"니네, 즐거운 걸 기획하던데?"

 

B는 약간 눈쌀을 찌푸렸다. 그는 학교 구성원 전체를 싸잡아서 '니네'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일단 제쳐두고 물었다.

 

"참여하려고?"

 

"물론이지."

 

버스가 왔다.

 

둘은 버스에 타고 나란히 앉았다. 그는 차창 밖을 조용히, 하지만 다소 감회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B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물었다.

 

"그동안 뭐했지?"

 

"...좀 돌아다녔어."

 

"어디를?"

 

"전국 팔도를 다 돌아다닌 것 같은데."

 

"네가 그렇게 돈이 많았나?"

 

"쳇, 기타 한 대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거든?"

 

"말도 안 돼."

 

"뭐가-"

 

"너는 그렇게 유들유들한 성격이 아니지. 기타만 잘 치면 뭐해, 인간관계는 허탕이면서."

 

"참 내."

 

"연주를 어디서 했는데."

 

"뭐. 일단 도시에 도착한다. 그러면 라이브 바 같은 데 찾아 보고. 거기 가서, '사장님. 당분간 알바 좀.' 그러면, 사장님이, '그럼 한 번 보여줘 봐요.', 그럼 보여 준다."

 

"끝?"

 

"끝. 이게 어렵냐?"

 

"말도 안 돼. 비자금 얼마나 숨겨놨지?"

 

"아오, 진짜."

 

버스는 어느덧 캠퍼스 입구까지 도착했다. 그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캠퍼스의 장엄한 장관을, 이번엔 꽤 감회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B는 그런 그에게 넌지시 '충고했다.'

 

"학교가 많이, '변했어.' 조심해."

 

 

 

- 2.

 

김 군은 온갖 생각들에 휩싸인 채 학회실로 향했다.

 

드디어 내일이면 두 달 여의 준비 기간을 거친 리얼리티 쇼가 개막한다. 광고학회 '싸이클론' 에서 이 쇼의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김 군은 무릎을 탁 쳤다. 재밌을 것 같았다. 지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피아 게임이란 소재가 대중에게 회자되며 은근한 인기를 끌고 있는 시점, 산골짜기에 갇혀 공부만 하느라 답답해 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컨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밌고 좋은 컨텐츠를 만드는 것, 김 군의 기획 철학은 단지 그것 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정성 들여 준비한 이 컨텐츠에-

자꾸만 손을 뻗대는 검은 손길이...

 

학회실에 도착한 김 군은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 골똘히 보고 있는 이 군에게 말했다.

 

"뭘 그렇게 유심히 봐?"

 

"아. 학회장님. 오셨습니까. 이것 좀 보십시오."

 

"?"

 

김 군은 다가갔다. 이 군이 가리킨 모니터 화면에는 뭔가 알 수 없는 목록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김 군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이게 뭐야?"

 

"이번 쇼에 지원한 학우 중에 L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L의 인트라넷 게시물 열람 목록입니다."

 

"...L 학우님이 인트라넷에서 뭘 봤는지 그 목록이라고?"

 

"예."

 

"그걸 알아서 뭐 해? 아니, 그보다, 이게 그렇게 쉽게 알 수 있나? 전산 학회 지금 뭐 하는 거야?"

 

"전산 학회원 한 명이 저에게 보내줬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그럼?"

 

"학회장님. 아직 모르시는군요."

 

"?"

 

이 군은 김 군에게 바짝 다가가며,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이 L이란 인물이 말입니다."

 

"어."

 

"감시 당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여러모로."

 

"...왜지?"

 

그러자 이번에는 김 군에게서 떨어진 후, 의자에 몸을 푹 파묻으며,

 

"푸하. 그게 좀 웃깁니다."

 

"?"

 

이 군은 이제 킥킥거리며,

 

"L이, 기타 연주를, 너무 잘 해서요."

 

"L이 하는 거. 어떤 정신의학적 최면술임다. 별 거 아님다."

 

마지막 말은 학회실로 들어오며 송 군이 한 말이었다. 송 군은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김 군은 더 말을 해 보라는 듯이 송 군을 바라보았다. 송 군이 말했다.

 

"L은 사기꾼임다.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지는 몰라도, 기타로 최면을 거는 검다. 자기를 좋아하게끔 만드는."

 

약간 혼란을 느낀 김 군은 미니 냉장고 속의 캔 맥주에 손을 뻗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송 군은 그런 김 군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말했다.

 

"불교 동아리에서, L의 기타 연주가 무슨, 뭐라더라? 그래, '불립문자(不立文字)'람다.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거람다. 이게 말이 됨까? 세상에 종교니 깨달음이니 하는 건 없슴다. 모든 것은 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해야 함다."

 

김 군은 냉장고를 열고 캔 맥주를 바라보며 송 군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냉장고에서 뿜어 나오는 한기가 약간 느껴졌지만, 학회실이 에어컨 때문에 이미 춥다시피해서 그것은 거의 무감각한 자극이었다. 김 군은 캔 맥주를 손에 쥐었다. 역시, 거의 무감각했다.

 

오직 예상치 못한 것만이 감각을 돌아오게 한다.

 

"대외비!"

 

갑자기 학회실 문을 박차고 들어 온 박 군의 외침에 모두는 그를 바라보았다. 김 군은 그제서야 손에 쥔 캔 맥주의 차가움을 느끼며 물었다.

 

"뭐지?"

 

"하나- 오늘 당장 마피아 게임을 시작할 것!"

 

아, '검은 손길'... 김 군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군은 거의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오늘? 오늘 막 학교에 도착한 학우들도 있는데, 피곤해서 어쩌라고?"

 

김 군은 일단 이 군을 제지하고,

 

"이유는?"

 

"이유는 묻지 말 것."

 

김 군은 미간을 좁히며,

 

"그리고, 두 번째는?"

 

"두 번째- 이게 중요한데-"

 

"빨리 말 해."

 

박 군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말했다.

 

"마피아를 한 명도 설정하지 말 것."

 

모두는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특히 이 군의 경우에는 거의 패닉 상태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김 군을 붙잡으며, 예전 버릇처럼 말했다.

 

"하... 학회장님, 어떻게 하지?"

 

김 군은 캔 맥주를 자신의 이마에 대었다. 그 차가움으로 열기를 식히며, 김 군은 대답했다.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하자. 하지만-"

 

"하지만?"

 

김 군은 이번엔 고개를 옆으로 꺾어, 뚜둑 소리가 나게 한 다음,

 

"순순히 나가지만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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