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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바람 소리인가요?"

 "아닙니다. 팬(fan) 돌아가는 소리입니다."

 T는 김 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바람이 느껴지지 않으니 아마 컴퓨터 팬(fan)을 말할 것이다. 편집실 위에 또 편집실이 있는 건가? 어쩌면 편집실이 비좁아 편법으로 증축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학교에 편집 물량이 그렇게 많은가? 

 "올라가겠습니다. 같이?"

 "아뇨, 어, 말씀드린대로. 무전기 가져오셨죠?"

 T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 군이 약간 어색하다고 느껴질 만큼 꽁무니를 빼는 모습이 여전히 의아했다. 들리는 소문대로 침착한 모습이 인상적인, 유력한 차기 학회장으로 거론되기도 하는 공연 예술계 종사자. 하지만 지금 미세하게 흔들리는 김 군의 어깨는 마치 어쩔 줄 모르는 어린 아이의 모습 같았다.

 T는 주머니에서 LED 플래쉬와 무전기를 꺼내 각각 오른손과 왼손에 든 다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두 번의 후회는 없다. 도망치지 않는다. 계단은 넓직하고 낮았다. T는 재빠르게 두뇌를 회전시켰다. 추리(推理)다. 이런 계단은 여학우들이 오르기 좋을 듯- 또는 비둔한 남성-

 곧, T는 왼손에 든 무전기를 입 근처로 가져갔다.

 "문(門)이 나타났습니다."

 "(치익-) 네."

 "밉니까, 당깁니까."

 "(칙-) 당깁니다."

 고약하군. 계단 밑에서 당기는 문이라. 만약 문 앞에 서 있다가 안에서 문을 열면 밀려서 굴러떨어질 수도 있는 거 아냐. 굉장히 고약하군. 

 T는 굴러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문을 당겼다.

 안은 깜깜했다. T는 어디 형광등 스위치라도 찾아서 불을 켜고 싶다는 충동을 다시 느꼈다. 안 된다. T는 플래쉬를 조심스럽게 돌려 통유리 창문을 확인했다. 블라인드가 있다. 저것을 내리면 어쨌든 침입의 흔적을 남기는 것 같은 찝찝함을 안게 된다. 불은 역시 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컴퓨터가 네 대였군요."

 "(치...) 네 대... 그렇네요. 맞습니다."

 네 대라. 네 대였군. 그리고 T는 약간 어지럽다고 느꼈다. 뭐지? 전자파(電磁波) 때문인가. 하지만 온갖 전자기기에 둘러싸인 랩(lab)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T에게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엉뚱하게도, 오늘 잠은 다 잤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와중이라, '그것'을 발견했을 때, T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저... 저기, 저기요, 김 학우님."

 "예... (칙-) 말씀하십시오."

 "'문어'입니다. 문어."

 "예?"

 "문어요... 그러니까, 다리가 여덟 개 있고 대가리가 동글동글한 게 문어 맞죠?"

 "맙소사... 문어로 바뀌었군."

 문어로 바뀌었다고? 그럼 예전엔 뭐였는데?

 "예전엔, 달팽이었습니다. 그리고... '촉수물'이었죠."

 이 냥반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T는 지금 아까보다 훨씬 더 어지럽다고 생각했다. 무슨 전자파가... 이래가지고 무슨 편집 업무를...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으며, T는 어항 속에 있는 문어를 바라보았다.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하... 학우님. 김 학우님."

 "T 학우님. 안 되겠으면 지금이라도 내려오십시오!"

 "문어가... 문어가... 어어... 저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치치치칙-) 진정, (치칙-) 십시오. 그래봤자 문어..."

 "문어가 저를...! 이 씨발놈이!"

 T는 주위의 모니터를 들어 어항을 깨부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고, 실제로 모니터를 움켜잡았다. 이 씨발놈아, 그 대가리를 납작하게 눌러주마! 침입의 흔적이고 뭐고 T가 결심을 굳혔을 때, T를 제지한 것은 내면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천우신조(天佑神助)였다.

 - 선생님! 저 이번엔 숙제 다 했어요!
 - 오셨어요, T 선생님. 우리 애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 안녕하세요, 어머니. 숙제 다 했다고?
 - 네! 진짜 열심히 했어요!
 - 잘했네. 오늘은 수업 전에 너튜브 안 봤지?
 - 네...!

 속아주는 거짓말.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겠지
 
 지금, 어디 있을까.

 잠깐의 회한에 젖어 있을 때, T는 창문 밖으로 뭔가 불빛이 휙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 이 높이에서? T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몸을 돌려 불빛을 찾았다. 

 맙소사. 저기에도, '6층'이.
 정확히 이 쪽으로... '8개'의 불빛을 쏘고 있는
 '6명'의... 사람?

 T는 무전기에 대고 중얼거렸다.

 "(1)학우님. (2)귀신을. (3)그러니까. (4)와우. (5)시발. (6)머리 아파. (7)귀신들이 떼로. (8)이 문어 새끼."

 "......"

 ".귀신들이 떼로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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