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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편집실(映像編輯室) 귀신(鬼神) -

 

 

 

- 0.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

- 이영도, <눈물을 마시는 새> -

 

 


- 1.

제1인문학관 복도에 그 포스터가 붙었을 때 대부분의 학우들은 웃어넘겼다. 그리고 호사가 기질을 가지고 있는 몇몇 학우들은 이 포스터를 누가 만들었으며 이면에 어떤 의도가 도사리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먹으며 추측했다. 어느 학우가 미친 과제량 때문에 살짝 미친 게 아니냐는 둥, 누가 어떤 여학우를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용기 내어 고백했다가 대차게 차이고 실성했다는 둥, 별의별 말들이 생산되었고 그 말들은 또랑(레스토랑) 환풍기에 흡입되어 천천히 날아갔다. 어쨌든 덥고 지겨운 초여름 어느 날의 해프닝으로는 걸맞은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포스터를 매우 유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짧고 반듯하게 깎은 스포츠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올리며, 그는 포스터 문구들의 자간과 행간에 숨어있는 모든 의미를
파악해 내겠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학우들은 두 번째 웃음을 터뜨려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매우 심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건... 정말 큰일이군."

시간은 성실하게 흘러 정신없이 돌아가던 학교의 하루가 서서히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셔틀버스의 운행까지 끝나자 캠퍼스 안에 딱히 몸 둘 데가 없었다. 매점은 영업을 마쳤고 도서관은 면학 분위기를 방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소속되어 있는 동아리가 없어서 갈 만한 동방도 없다. 할 수 없이 그는 제1인문학관 5층 복도의 한 구석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드디어, 누군가 왔다. 그는 찾아온 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T입니다."

"공연기획학회 아이리스 학회원, 김 군입니다."

"반갑습니다. 혹시... 그 학우님은 안 오실까요?"

"오시지 않을 겁니다-"

"...풍문은 종종 들었습니다만..."

T는 주저주저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김 군은 그런 T의 반응을 눈여겨 보며,

"...옛날에 어떤 여고를 배경으로 하는 공포영화가 있었다는데 혹시 아십니까?"

"으음? 아, 네."

"그 영화처럼 그 학우도 아주 오래 전부터... 학교가 개교하던 날부터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썰'이 있습니다."

"...그럼 지금 나이가 한 오십은..."

"쓸데없는 얘기겠죠. 어쨌든 가 봅시다."

"네. 잠시만..."

T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자신의 짧은 머리를 쓸어넘겼다. 김 군이 물었다.

"그게 뭡니까?"

"청심환입니다."

김 군은 이번에도 머릿속으로 잘 기억해 두기로 했다. 둘은 걸음을 옮겼다. 곧 제1인문학관 5층 복도 끝에 도착한 그들은,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끼익, 하는 소리가 났다.

"보시다시피 여기가 저희 공영과가 쓰는 영상편집실입니다만..."

T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로 공학관에서 서식하는 그는 인문학관에 올 일이 별로 없었을 뿐더러 이런 야밤에 5층까지 - 경비 아저씨의 순찰을 피해 - 올라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플래쉬 켜겠습니다."

김 군은 LED 플래쉬를 켰다. 곧 하얀 빛이 집중력있게 목표를 밝혔다. 김 군은 플래쉬를 조심스럽게 돌려가며, 일단 창문에 커튼이 빈틈없이 닫혀있는 것을 확인했다. 김 군은 이번엔 편집실 내부를 비춰보았다. 책상 위에 어지러이 굴러다니는 에너지드링크, 과자 뽀시래기, 신문지, 만화책, 게임공략책 등등이 눈에 띄었다. 특이점 없음. 김 군은 눈짓으로 사인을 보냈고 T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에 뭔가 걸리지 않게끔 조심하고 숨소리 또한 최대로 죽여가며 도착한 그 곳엔 아름다운 썸머퀸이 있었다.

"자."

그녀의 자태가 플래쉬의 빛을 스포트라이트 삼아 반짝이고 있었다. 둘은 침을 꿀꺽 삼켰다. 김 군은 서서히 손을 뻗었다.

"이럴 수가..."

T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결국 T는 손을 미세하게 떨었고, 김 군은 이번에도 그런 T의 반응을 눈여겨보았다.

"이 사실은 외부로 알려져선 안 됩니다."

"......"

김 군이 떼어낸 브로마이드 뒤편에는, 이른바, '비밀계단'이 있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이 학교의 건물들이 죄다 낮은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인데, 건축법상 오 층 이상의 건물에는 엘리베이터를 필히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눈 앞에 육 층의 존재를 아주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 증거물이 펼쳐져 있었다.

"올라가도 됩니까?"

T가 물었고, 김 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김 군의 다음 말은 T에게 청심환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다.

"그럴 자신이 있다면 말이죠."




- 2.

긴급 수배 : 영상편집실(映像編輯室) 귀신(鬼神)

제군들! 잘 들어라! 이는 아주 긴급한 사안이다.
지금 우리 학교의 영상편집실에 아주 사악한 귀신이 출몰하고 있다.
이 귀신은 단순한 편집실 지박령 따위가 아니다.
이 귀신은 사람들을 홀리고 괴롭히고 고통을 주고 약하게 만들어
그 정신을 지배한다. 아주 악랄한 녀석이므로, 반드시 퇴치가 필요하다!
제군들이 할 일은 간단하다.
셔틀버스의 운행이 종료되고 정확히 120분 후, 제 1인문학관 5층으로 가라.
그 곳에서 귀신의 존재를 발견하면, "귀신아! 이 곳을 떠나라!"라고 외쳐라.
그러면 그 귀신은 홀연히 도망하여 천마지 근처 농장의 돼지에게로 들어갈 것이다.
건투를 빈다!

권장 파티원 수 : 3명

추신, 탱 딜 힐 조합을 잘 짜라!

게시일자 : 201x년, 6월 x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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