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이야기

행복과 우울의 경계에서

낮아짐 이야기제작소 2020. 1. 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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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과 우울의 경계에서 -

 

 

 

 '죽은 듯 누워있다 나는'

 

 나는 곰팡이 핀 벽을 바라보았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는 질색 팔색을 하며 곰팡이들을 닦아냈다. 하지만 녀석들은 곧 다시 피어올랐다.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이었다. 그러고보니 집에서 처음 바퀴벌레를 봤을 때 질색 팔색을 했던 때가 생각난다.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행복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적합하게 들어맞은 상태를 뜻한다. 그러므로, 햇빛 들지 않는 반지하방에 있는 나는 행복하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불행한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정확히는,

 

 우울하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대충 씻고, 면도를 슥슥 대충하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방문 교사로서, 나는 약 서른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의 수업을 맡고 있었다. 오늘 수업은 지수네에서, 그리고 이따 저녁 때 민율이네서 수업이 있다. 조금 걷자니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쳤다. 나는 검정 롱패딩의 지퍼를 끌어올렸다. 

 

 버스를 타고, 좌석에 몸을 파묻었다. 잠시 그렇게 창 밖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자니, 전화가 왔다. 지점장이었다.

 

 "여보세요?"

 

 "지훈 쌤! 몸은 좀 어때요?"

 

 지점장이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명쾌하려 애쓰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나의 우울은 완벽하게 감춰졌다. 오늘 아침에 있는 교사 미팅에 나는 불참했다. 몸이 아프다고 핑계를 댄 것이다. 사실은 몸이 아픈 게 아니다. 나는 두려웠다. 

 

 자본주의는 우울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쌤, 시언이 있잖아요?"

 

 "시언이요? 네."

 

 "시언이네 어머님이, 선생님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

 

 "선생님, 선생님이 좋은 분인 건 어머님도 알겠대요. 그런데, 시언이 걔가 워낙 유난이잖아요. 그래서 좀 엄한 분으로 바꿔달라고..."

 

 "네, 네."

 

 정 주고 마음 줘봤자 생기는 것은 교사 교체. 나는 속절없이 안타까웠지만, 안타까움을 감추고, 물었다.

 

 "그럼 누가...?"

 

 "네, 네. 영희 선생님이 맡게 될 거예요!"

 

 나는 지점장의 목소리가 약간 밝아진 것을 느꼈다. 그것은 나를 조금 더 속상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알겠습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전화를 끊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내가 담당하는 아이들이 영희 선생에게로 넘어가게 된 것은.

 

 버스에서 내려, 지수네 집으로 향했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길가 구석진 곳으로 흘러들어가, 담배를 물었다. 시린 손을 비비며 잠시 담배를 피우고 있자니, 핸드폰이 진동했다. 민율이 어머니였다.

 

 [선생님 질문요 ~~~이번달은 기존쌤이 해주시는거고 담달부터는 선생님이 수업과 보충 다 해주시는거죠?]

 

 기존쌤? 나는 답문을 보냈다.

 

 [네. 일단 1월 진도 수업하고 이어서 2월 진도하면서 그동안 민율이가 빠졌더 수업을 보충할 생각입니다~! ^^]

 

 [네 그럼 오늘은 남자쌤이 해 주시는거구요]

 

 남자쌤?

 

 [이, 제가 남자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이 바뀌나요? 저는 전달 받은 게 없어서...ㅠㅠ]

 

 그리고 잠시 랜선 침묵이 흘렀다. 나는 꽁초를 비벼 껐다. 답문이 왔다.

 

 [어머 죄송요 ~~~제가 문자를 완전 잘못보냈어요 다른 과목이야기인뎅 ㅎㅎ]

 

 [앗, 네! ^^]

 

 착각하셨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지수네 집으로 향하며, 나는 가방에서 탈취제를 꺼내 몸에 뿌렸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니, 지수 어머니께서 따스한 차를 내오셨다. 따스한 분이었다. 지수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수업에 임했다. 수업은 무난하게 끝났다. 나는 지수네 집을 나서며, 지수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저녁 때 있을 민율이 수업 때까지, 약간 시간이 남았다. 나는 교재를 챙기기 위해 지점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뭔가 이상한 공기를 느꼈다.

 

 "어머, 지훈 쌤? 어쩐 일로-?"

 

 지점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며 물었다. "교재 좀 가지러 왔어요." 나는 대답했다. 지점장의 옆에 있던 영희 선생이, "그럼 전 이만 수업 가볼게요." 하고 짐을 주섬주섬 싸기 시작했다. "고생하세요." 나는 영희 선생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문 밖으로 향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흘겨보았다.

 

 교재를 챙기고, 나도 사무실을 나서려 했다. 그때 뭔가 이상한 시선을 느끼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지점장이 멍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왜요?"

 

 "아, 아니예요. 고생하세요, 쌤."

 

 지점장의 목소리에 콧소리가 빠져 있음을 느꼈다. 나는 고개를 선뜻 갸우뚱했지만, 지점장의 현재 상태에 어림 짐작이 갔다.

 

 자본주의는 우울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무실을 나서니, 다시 칼바람이 몰아쳤다. 나는 검정 롱패딩의 지퍼를 끝까지 끌어올렸다. 자본주의는 우울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점장은 나에게 자신의 우울을 언뜻 내비쳤다. 사람들의 분노와 우울은, 늘 나의 몫이었다. 나에게만은, 그들이 그래도 된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언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그리고 녀석은, 우울하다.

 

 그런 시언이에게 나는 녀석의 우울을 받아주는 존재였다. 녀석은 활달하고 까불까불거렸고, 소위 '극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이의 극성은, 잠재적인 불만을 표출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다. 나는 녀석이 활개치게끔 내버려두었다. 녀석은 나를 좋아했다. 그리고 시언이 어머니는 점점 나를 탐탁치 않아 했다.

 

 대한민국 부모의 교육열은, 교육열이 아니다. 출세욕이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떨쳐 내고, 민율이의 집으로 향했다. 십 분쯤 걸었을까. 나는, 비참한 생각이 들어, 멈춰서야 했다.

 

 아까, 사무실에서 영희 선생이 짐을 챙기고 나갈 때, 민율이의 교재도 챙겼다.

 

 "선생이 바뀌었구나..."

 

 나는 중얼거렸다. 아까 민율이 어머니가 내게 보낸 문자는, 멍청하게도, 내가 바뀐 선생인 줄 알고 나에게 문자를 보낸 것이었다. 그러면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대한민국 부모들이 이렇게 정신없다. 선생이 바뀌었다. 글 좀 깨나 쓸 줄 아는 잔재주로, 글쓰기 선생을 했다. 그리고 나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마냥, 헤메이고 있었다.

 

 아니, 옷이 아니다. 이것은, 무겁고 무거운 갑옷이다. 나는 한없이 가라앉는다.

 

 수업에 의욕도 없고, 그저 부모가 시키니까 억지로 수업에 임하던 민율이가 생각났다. 나는 민율이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민율이가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를 했었다. 민율이의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래서 요즘 애들이 하는 배틀그라운드니, 오버워치부터 시작해서, 이 나이대의 아이들은 잘 모르는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게임의 장르의 종류, 게임의 역사... 반짝이는 민율이의 눈...

 

 다 부질없는 희망...

 

 나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사무실의 문을 여니, 지점장이 혼자 울고 있었다. 지점장은 나를 보고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쌤, 왜 돌아왔어요?" 지점장이 황급히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나는 지점장이 평소에 우울을 완벽하게 감추고 있었다고 확신했다. "왜 우세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지점장이 눈물 범벅인 얼굴에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예요. 이번 달 실적 안 좋다고 좀 까여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점장이 말을 이었다. "센터에서, 저는 숨도 쉬면 안 되는 존재예요."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점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지훈 쌤, 나 좀 살려주세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티슈를 그녀에게 건네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연신 고맙다고 중얼거렸다.

 

 행복과 우울의 경계에서, 나는 있다. 

 

 내가 교사 일을 관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이다. 많이 한가해진 나는, 지난 겨울을 생각하며, 행복과 우울의 경계를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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